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하여 고지·징수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정부가 추진하고 있습니다. 만약 오는 7월 5일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당 안건이 의결된다면, 대통령실이 올해 3월 온라인 국민참여토론 안건으로 ‘TV 수신료 징수방식(TV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 징수) 개선’을 올린 지 118일 만에 ‘초고속으로’ 시행령이 개정되는 셈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개정의 효과로 ‘국민 불편 해소’를 꼽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국민 불편이 해소될까요? 오히려 불편이 심화되고 국민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큽니다. 시행령이 바뀌더라도 현행법상 ‘수신료 납부 의무’가 존속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수신료를 별도로 납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릅니다. 또 사실상 수신료 납부 회피가 조장될 수 있어 납부자의 형평성과 공정성도 붕괴될 우려가 높습니다.

특히 공영방송사가 공익적인 콘텐츠 제작에 써야 할 비용 수백억 원을 징수비용으로 낭비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신료를 분리징수하고 있는 일본 NHK의 경우 매년 약 6천억 원(622억 엔, 2022년 기준)에 이르는 비용을 징수에 쓰고 있는데, 이는 수신료를 전기료에 통합징수하고 있는 KBS가 한국전력에 지급한 수수료 465억 원(2022년 기준)의 13배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공영방송의 재정 붕괴도 불가피합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재난방송, 국제방송, 한민족방송, 대북방송, 장애인․소외계층을 위한 채널과 프로그램, 전국의 지역 네트워크 유지, 교향․국악관현악단 운영 등 국가기간방송 기능 및 시청자를 위한 공적 서비스의 많은 부분에 대한 축소 또는 폐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1994년 통합징수를 계기로 도입한 1TV 광고 폐지, 취약층 수신료 면제 확대 등 공익적 제도를 유지하는 일도 쉽지 않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신료 분리고지는 단순히 징수방법의 변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민주 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공영방송 제도를 대한민국에서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와 직결되는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영방송 제도가 바람직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걸맞은 공영방송의 책임과 역할, 지원 방안에 관한 법적‧제도적 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번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같은 ‘속전속결’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핀란드는 수신료 전담 기구를 만들어 사회적 논의를 거친 뒤 제도를 바꾸는 데 4년(2007~2011)이 걸렸고, 독일은 수신료 징수기관을 바꾸는 데에만 10년 이상(2000~2010) 소요되었습니다. 영국의 경우 2028년 이후 공적 자금 지원을 통한 공영방송 강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프랑스는 오랜 논의를 거쳐 수신료를 세금으로 대체했습니다.

KBS는 단순히 하나의 방송사가 아니라 법에 규정된 다양한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이러한 ‘공공 인프라’로서 KBS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더욱 숙성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공영방송의 개선‧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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