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온 북한 미술’


 


2000년 이후 남북 사회문화교류는 그 이전의 교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확대발전되었다. 이를 통해 교류 초기의 단일성을 벗어나 다양한 방면의 교류로 확대되었고, 교류의 내용에 있어서도 전문분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그 교류의 대부분은 2000년 전반기에 집중되었고,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급속히 단절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주된 이유는 다른 사회문화교류와 만찬가지로 미술교류도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요인에 의해 진행되어왔으며, 따라서 미술교류의 독자적인 관계망을 형성하지 못하고,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에 이끌려왔기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미술교류는 주로 북한미술작품이 남한에서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남한미술의 북한 내의 전시를 추동시켜내지 못하였다는 한계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그러나 남북미술교류의 장소가 이전 시기 주로 제3국에서 진행되던 것이 남북한 중심으로 옮겨졌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으며, 이를 통해 남한 대중들이 북한미술작품을 감상하고 경험할 기회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특히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이 시작됨으로써(2010년 4월 현재는 중단되어 있다.) 북한 현지에 가서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길이 열렸으며, 그 과정에서 작품 판매처에 나와 있는 북한의 작가들을 남한의 대중들이 만나게 되는 기회도 발생하게 되었다.


미술교류는 작품 교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주로 회화작품에 한정되었다. 미술 교류의 내용에 있어서는 이념성은 배제되었다. 특히 남한 미술시장 안에서, 남한의 대표적 작가 작품의 가격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가격으로 북한 작품이 거래되면서, 북한미술교류 전시는 ‘감상’ 공간이 아니라 ‘투자’를 위한 공간으로 남한대중에게 빠르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술교류를 위한 전시 작품이, 전시 후 다시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방식보다는, 남한의 미술교류 주최자가 북한 미술작품 교류를 전제로 일관 구입한 후 남한에서 전시하는 방식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여 집 안에 걸어놓고 감상하고 싶었던 대다수 대중들의 욕망이,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북한미술작품들을 주목하게 된 요인 또한 크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2000년대 전반기 남한 미술시장 자체가 매우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들의 욕구와 이에 부흥한 미술교류의 양적 증가의 확대 재생산은, 미술계의 검증 없이 자체 동력으로 굴러가면서, 작품의 진위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드러내게 되었다. 미술교류가 단절적이고 이벤트적인 사업 위주로 지속되면서, 북한미술연구자를 길러내지 못하였고, 특히 작품 중심의 교류와 인적교류의 제한성은 미술인들간의 인적 네트워크 또한 만들어내지 못함으로써, 시장에서 급증하는 작품의 진위문제에 대한 요구를 해결해내지 못하였고, 이는 북한미술을 둘러싼 미술시장의 급랭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에 이루어진 가장 의미 있었던 미술교류 사업으로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전시는 2006년 6월 13일부터 8월 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8월 28일부터 10월 26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 전시 작품은 평양의 조선중앙박물관에서 대여한 90점의 작품과 조선미술박물관에서 대여한 회화 작품 20점이 대여되어 소개 되었다. 이 교류는 광복 후 남북 박물관의 첫 학술교류 사업이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으며, 특히 시장에서 북한미술의 진위 문제가 심각하게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가기관간의 교류였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남한의 최고 미술전시기간이 북한에서 온 미술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미술전시가 단순히 공간 안에 미술작품을 턱턱 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이라, 작품을 둘러싼 여러 행위, 즉 전시 관련 동선, 조명 등을 비롯한 전시 디스플레이, 홍보, 교육 등을 통해 전시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해석하고 관람객들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소통하고자 하여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전시 행위는 그동안 남북한 미술교류가 주로 민간교류로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했던 미술전시의 비전문성 문제와 비교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소개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전통의 중요한 페이지들을 복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며, 남북한이 하나의 전통을 공유했던, 하나의 어버이 밑에서 태어난 형제였음을 되새길 수 있는 전시였다는 점이 가장 큰 의의였다 할 것이다.


 


<필자 : 박계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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