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주목 받는 그림
북한미술계에서 2000년대에 주목할 만한 그림의 형식은, 몰골법(단붓질법)으로 지칭되는 미술 형식의 대대적인 사용과, 이전시대 위축되어 있던 풍경화의 약진을 논할 수 있다.
북한 회화사에 있어서 1986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해였다.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조선미술박물관에서는 재불 한국화가인 이응로, 박인경 부부의 〈난초〉등 수묵화 110여점의 전시(1986.9.22-10.7)에 이어 정관철 정종여 2인전(1986.12.30 -87.1.30)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이는 1957년 이석호의 개인전 이후 최초의 대규모 수묵화 전시가 정부 주도로 개최되었다는 점에서 이 전시를 수묵화 복권의 공식 선언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1986년에서 1987년에 걸친 일련의 사건들이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닌 듯하다. 작가와 일반인에게 있어서 수묵몰골 전통은 아직도 타파해야할 봉권착취계급의 유산으로써 계급적으로 불온시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수묵몰골을 비롯한 민족적 전통에 대한 연구가 계급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것은 김정일의 ‘우리민족제일주의론‘(1989)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후로 특히 2000년대 들어와서 본격화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는 ‘함축’과 ‘집중’을 중요시하는 미술론의 부각과 연결된다. 따라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리는 극사실주의 작품보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파악하여, 이 특징에 집중하여 그 내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창작할 것을 요구하는 미술계의 평가 또한 2000년대 보다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미술작품의 평가에 있어서 창의성을 중요시하는 김정일 미술론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2005년부터는 소묘붐이 일기도 하였다. 북한미술계는, 군부대 방문 중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만경대학생소년궁전 미술소조 출신 군인이 그린 연필화를 관심 있게 본 후 이를 화첩으로 제작하여 보급할 것을 지시한 것을 계기로 소묘 붐이 일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는 2006년 김정일 64회 생일을 기념하여 ‘2.16 경축 제1차 전국소묘축전’의 개최로 이어져 이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가장 부각되는 미술작품은 역시 선군미술 작품들이다. 김일성주석 사후 영생을 주제로 창작되는 ‘수령영생미술’,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보여주는 ‘선군혁명실록’ 관련한 인물화 작품들뿐만 아니라 ‘선군8경’이라는 선군과 관련된 대표적 장소 여덟 곳을 그린 풍경화도 많이 그려지고 있다. 정동혁 ․ 조윤식의 <우리 손에 쥐여 진 총대에 조선혁명의 승리가 있다>(조선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선군미술의 중심 아이콘은 ‘총’이다. 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선군사상은 총대철학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군기치를 필승의 보검으로 틀어쥐시고>(조선화)는 김정일을 중앙에, 그 옆에는 최고사령부 작전지휘성원, 현지 사령관 등 병사들을 배치하고, 화면 양 끝에는 무기를 탑재한 군용트럭을 설정하여 이들이 발맞춰 행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같이 김정일이 군부대를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담은 ‘선군혁명실록’과 같은 작품들도 제작되고 있다.
그 중 필자가 주목하는 작품은 ‘수령영생미술’의 한 예인 리동건의 <언제나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조선화) 이다. 이 리동건의 작품과 안영일의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바치시는 시간>(조선화)과 비교하여 보면 같은 조선화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현형식에서 많은 차이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영일의 작품은 조선화임에도 불구하고 인물 대상의 덩어리감, 화면 안의 깊이감을 잘 표현하고 있음에 반하여, 리동건의 작품은 얼굴과 손은 극사실주의 형식을 사용한 것에 비해 몸에는 몰골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또한 화면은 크게 배경의 흰색과 대상의 검은색으로 구분하여 흑백대비의 평면적 화면을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리동건의 작품은 러시아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과의 차별성을 지님과 동시에, 전통 초상화에서 대상의 얼굴은 극사실주의로 그리고 몸은 평면적으로 처리하는 전통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현대적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겠다. 또한 김정일 미술론에서 강조한 ‘함축’과 ‘집중’이 인물화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필자 : 박계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