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북한미술의 흐름


김정일이 대두하는 1970년대부터는 북한 미술계에서도 전통적 가치를 재확인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이는 누구를 숙청하고 청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30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조금씩 학계의 합의를 이뤄가는 과정을 통해서 진행되었고 2000년대에는 봉건착취계급의 퇴폐취향을 반영한다고 비판받아온 사의(생각을 그린다)적 수묵화에 대한 온전한 재평가, 복권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1970년대까지 거의 연구되지 않던 조선시대의 고전적 전통을 소개하는 글들이 발표되는 것은 1981년부터 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에서 문화혁명의 상처를 딛고 학자들이 다시 학교로 복귀하여 중국의 전통회화와 화론에 대하여 연구하고, 그 성과를 간행물을 통하여 일반에 공개하기 시작하는 것도 1980년대 초인데, 비슷한 시기에 북한도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1986년 7월 15일 김정일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는 후일 우리민족제일주의론(1989)으로 체계화되는 민족적 사고가 담겨있어 주목되고 있다. 민족제일주의는 1980년대 말 페레스트로이카 실패에 따른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동구사회주의의 붕괴에 대응하여 정권의 정통성을 사회주의 혁명의 필연성보다는 민족적 전통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로서 해석되고 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단군릉, 동명왕릉, 왕건릉의 대대적인 복원, 보수, 개축이 1990년대에 이어졌다.


나아가 2000년대에는 봉건착취계급의 중심에 있던 문인들의 대표적인 미술인 문인화 라는 개념마저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롭게 허용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묵몰골에 대한 계급적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은 그간 불온시 되어왔던 조선시대 회화전통에 대한 새로운 연구에 봇물을 터 주었으며, 이러한 연구는 미술품에 대한 양식분석적 방법론과 작가별 개성적 화풍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심화시켜주었다.


2000년 이후 미술의 새로운 경향의 가장 대표적인 흐름은, 김정일시대 본격화된 선군정치와 관련된 선군미술의 부각이다. ‘선군혁명문학예술’은 1990년대 후반 군부대 소속 예술단의 선도에 의해 시작된 후 문학예술계 전 분야로 확산된 것으로 파악된다. 창작방법이나 미학에서는 주체문학예술을 일면 계승하고 있지만, 작품의 내용면에서는 ‘선군시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을 핵심으로 ‘수령결사옹위정신’, ‘군민일치’, ‘혁명적 낙관주의’, ‘총대사상’ 등을 담은 ‘선군혁명문학예술’로서의 미술작품들이 적극적으로 창작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2002년 건립된 기념비조각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을 꼽을 수 있다. 총 부지면적 11,000여㎡에 건립된 이 기념탑은 김일성동상과 그 뒤로 총대와 총검을 형상한 총대탑, 그 우측으로 길이 35m, 높이 4m의 혁명사적비로 형상화 되여 있다. 부주제군상 앞면에는, 선군시대를 맞이하여 선군의 어머니이자 백두장군으로 이미지가 부각되어 왔던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어 주목되지만, 역시 이 기념비 미술에서 우리의 시선을 가장 부여잡는 것은 총대탑이다.


무산지구전투승리 기념일인 1939년 5월 23일 기리기 위해, 39.523m의 높이로 제작된 총대탑은, 혁명은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선군사상의 선군혁명원리를 상징화한 것이다. 이전 시기에도 대기념비미술은, 김일성동상과 부주제군상 및 탑과 사적비라는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었지만, 총대탑이 등장한 예는 없었다. 따라서 <무산지구전투승리 기념탑>은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미술로 자리매김될 것이라 판단된다.


특히 기념비미술 구성에서 탑과 김일성동상간의 조형성 문제에 대해 북한미술계는 김일성동상이 항상 제일 부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02년 제작된 이 기념탑에서는 동상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총대탑도 강조할 것을 조형적으로 요구하고 있어서, 이 총대탑의 중요성이 전해진다. 이를 위해서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은, 총대탑과 동상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워지게 함으로써, 관람자가 기념비미술을 볼 때 가장 먼저 동상으로 우러러 볼 수 있게 구성하고, 총대탑이 동상보다 높다는 느낌보다는 보호한다는 인상을 주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그동안 공백으로 비워두던 혁명사적비의 뒷면에 <대흥단삼천리>라는 1930년대 노래가사를 적어 넣어 이 사건이 벌어졌던 시대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시도도 이전시기 기념비미술에서 볼 수 없었더 요소이며, 조각과 서예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조형 형식을 시도하였다는 점에서도 이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20세기와는 다른 21세기 기념비미술을 이끌 선구적인 예로 주목하게 한다.


이처럼 선군미술은 회화뿐만 아니라, 기념비미술를 비롯한 전 장르에서 선군정치로 대표되는 김정일시대의 시대성을 대표하며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필자 : 박계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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