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북한영화와 칸느영화제에 소개된 최초의 북한영화 <한 녀학생의 일기>(2006)


 


고난의 행군을 마친 북한은 2000년대를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 발언으로 시작하며 실용주의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흰연기>(2000), <세대의 임무>(2002) 등 영화에서는 명분보다 실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력가이자 컴퓨터 등 정보통신에 익숙한 젊은 주인공들이 급속하게 등장했다. 한편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며 변화된 남북관계를 인식해 분단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우물집녀인>(2002)과 같은 작품도 제작되었다.


2000년대 제작된 작품 가운데 특히 <한 녀학생의 일기>(2006)는 북한에서만 800만 이상의 관객동원, 북한영화사상 최초로 칸느영화제 상영이라는 기록을 세워 남측의 관심을 받았다. <한 녀학생의 일기>는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이 영화를 본 프랑스의 배급사 프리티 픽처스의 제임스 벨라즈 대표가 판권을 구입해 칸느영화제에서 상영이 이루어졌다.


<한 녀학생의 일기>(영화문학 안준보, 연출 장인학)는 평범한 한 과학자 가정의 생활을 대학진학을 앞둔 수련의 일기 형식으로 보여준다. 컴퓨터와 영어에 소질이 있는 수련은 아버지처럼 이과대학에 진학해 과학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친구 아버지들이 박사학위를 따고 성공하는 동안 과학자 아버지가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하고 수련이 어려서부터 그렇게도 살고 싶어한 아파트 하나 마련하지 못하자 수련은 아버지같은 ‘실패한 과학자’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영화는 역사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학을 앞둔 수련의 심리적 갈등과 가족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영화는 일기라는 고백장치를 통해 비교적 솔직하게 북한의 평범한 청소년의 소망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수련의 아버지, 어머니가 여전히 개인적 성공보다 당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는 등 공식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데 비해 수련은 그러한 부모들의 태도를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학위도 얻고 남들보다 좋은 아파트에도 들어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의 새로운 점은 수련의 이와 같은 솔직한 태도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데 있다. 뉴욕타임즈도 이 영화가 북한의 해빙조짐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평가할 정도로 영화는 북한의 인민들의 내밀한 소망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리며 그것을 긍정적으로 보여준다. 이외에도 영화는 문화어(표준어)에 맞춘 공식적 말투가 아닌 인민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입말(구어체)을 구사하여 현실감을 높이고 있다. 그 결과 도식적으로 가공한 현실,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로서의 영화가 아닌 현실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더 높이고 있다.


이와 같이 <한 녀학생의 일기>는 내용과 표현에서 모두 현실성을 영화에 담고 있다. 그동안 북한영화는 ‘혁명적 낭만주의’의 원칙에 의거해 이상적인 현실과 해결을 주로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의 고백장치와 구어체 그리고 그들을 통해 재현되는 현실적 갈등은 북한영화가 그동안 놓치고 있던 현실을 더 깊게 영화에 밀어 넣었다.


 


 


<필자 : 이명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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