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고원의 전경 >

백두고원의 형성


백두고원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평균 해발 고도가 1,400미터에 이르는 고원지대이다. 또한 이곳은 백두산으로부터 남동부로 100킬로미터 이상 넓게 펼쳐진 현무암 용암대지로 이루어져 있다. 용암대지 위에는 백두산을 비롯하여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일련의 화산 봉우리들이 산맥을 이루어, 백두대간의 첫번째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많은 역사적 기록을 통해 백두산과 백두고원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또 현세까지도 계속 진행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우리가 알고 있는 백두고원의 화산 분출 활동은 상대적으로 젊은 지질시대인 신생대에 이루어졌지만, 백두고원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하부는 5억 7천만 년 이전의 선캠브리아기부터 중생대에 이르는 암석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백두고원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백두고원이 현재의 모습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신생대로 접어들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백두고원의 화산 활동은 백두산 심부단열대라 불리는 백두산에서 남남동으로 북한의 양강도 남쪽 끝에 있는 백암 지구를 거쳐 무수단에 이르는 거대한 열곡구조에서의 용암 분출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된다.


현무암 용암대지의 형성

약 2천만 년 전 제3기 마이오세부터 시작된 현무암질 용암의 연속적인 분출은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기반암 위에 거대한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다.
용암은 백두산, 소백산, 북포태산, 아무산, 백사봉, 두류산 등 백두고원의 주요 화산체가 위치하는 지점에서 갈라진 틈을 따라 분출하여, 200미터에서 600미터에 이르는 두께에 15도 이내의 경사를 가진, 완만하고 평탄한 고원지대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현무암의 분출은 지역에 따라 제4기(160만 년 전 이후)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백두산 및 주요 화산체의 형성

현무암질 용암은 점성이 약해서 넓은 지역으로 평탄하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유문암질 및 조면암질 용암은 상대적으로 점성이 강하기 때문에 분출 후 멀리 퍼지지 못하고 급경사의 종 모양을 이룬 종상(鐘狀) 화산체를 형성하게 된다.
제4기에 접어들자 백두고원에서의 화산 작용은 점성이 강한 용암들의 분출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 백두대간을 이루고 있는 백두산, 소백산, 북포태산과 같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봉우리들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특히 백두산에서는 화산재를 포함한 분출 작용이 그 후에도 7, 8만 년 전까지 계속되어 해발 2,700미터가 넘는 백두산 최고봉인 장군봉 및 주요 천지 외륜부의 봉우리들을 형성하였다.






<백두산 천지 >

백두산에서의 폭발성 화산 분출

현재 백두산을 중심으로 반경 약 4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지역은 거대한 화산 폭발에 의한 부석(pumice)으로 덮여 있다. 부석은 다량의 물과 가스를 포함한 용암이 폭발과 함께 공중에서 굳어 형성된 것으로, 비중이 물보다 낮아서 물 위에 뜬다. 백두산 근처에서 발견되는 부석층의 두께는 20미터에 이르며, 멀리 떨어진 삼지연 부근에서도 1미터 이상의 두께를 보여 주고 있다. 다량의 폭발성 용암 분출이 있은 후, 백두산의 윗부분이 원형으로 수백 미터 함몰되어 천지가 형성되었다.
그 이후에도 백두산에서는 간헐적으로 화산이 분출되었다. 조선 중기(1700년경)에도 큰 화산 분화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근세에 이르러서는 1903년에 일어난 소규모의 화산 분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백색 부석 >

백색 부석


약 1,000년 전 백두산은 마지막으로 거대한 화산 폭발을 일으켜 엄청난 양의 백색 부석을 분출하였다. 백색 부석은 물과 휘발성 가스를 다량 함유한 산성 용암이 폭발적으로 터지면서 공중에서 식어 형성된 것이다. 이때 물과 가스가 있던 자리에 많은 구멍이 생겨나 매우 가벼운 성질을 갖게 되었다. 실제 부석의 비중은 물보다 가벼워서 물에 뜰 뿐 아니라, 손으로 긁어도 쉽게 긁힐 만큼 약하다.
백두산 남쪽의 대연지봉, 소연지봉, 무두봉 같은 기생 화산들은 화산의 형태를 만든 현무암이나 조면암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나, 그 위는 수 미터에서 20미터에 이르는 두꺼운 백색 부석으로 덮여 있다. 그런데 부석층 아래 약 3, 40센티미터 지점부터는 영구 동결층이 존재하는 점이 특이하다. 기온이 영상 20도 이상 올라가는 6월 말의 따뜻한 날씨에도 부석층을 파 보면, 그 아래에서 맑은 수정 같은 얼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속이 빈 부석들이 열 전달을 차단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 북한에서는 이러한 부석을 단열재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부석층은 백두산 천지로부터 반경 약 40킬로미터까지 분포해 있는데, 천지에서 멀어질수록 부석층의 두께는 점점 얇아진다. 분포 형태는 백두산 서쪽보다는 동쪽으로 더 멀리 퍼진, 타원체 형태를 나타낸다.
최근 학자들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백색 부석과 함께 분출한 화산재는 편서풍을 타고 멀리 일본 본토의 북부 지역 및 북해도까지 날아간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10세기 전후의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아오모리현 내의 토양층 내에는 일본의 화산 분출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성분을 가진 얇은 화산회층이 협재되어 있다. 이 화산회층의 근원을 추적한 결과, 화산재가 백두산에서 기원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그곳에서 발견되는 화산재를 <백두산-토마코마이 화산재>라고 명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화산재는 동해의 해저 퇴적물 시료(試料)에서도 발견되었으며 백두산 쪽으로 갈수록 화산재는 두꺼워진다.






<매몰목>

탄화목과 매몰목

백두산에서 마지막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 엄청난 양의 부석이 분출되어 당시 백두산 일대에 분포해 있던 산림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현재는 그 당시 부석에 묻혔거나(매몰목), 또는 뜨거운 부석으로 인해 타 버린 숯(탄화목)의 형태만이 발견될 뿐이다. 무두봉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몰목은 두꺼운 부석층 위로 앙상한 몸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 부근의 부석층 두께는 5미터가 넘으므로 현재 보이는 부분은 나무의 중간이나 윗부분에 해당한다. 매몰목은 주로 잎갈나무인데 나이테로 짐작컨대 50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백두산 남쪽의 또 다른 거대한 화산 칼데라(caldera)의 일부인 소백산 부근에서는 완전히 숯으로 변해 버린 탄화목이 발견되었는데, 2차적으로 운반된 부석 퇴적층 안에 협재되어 있었다. 직경 약 15센티미터인 이 탄화목은 완벽한 형태의 나이테를 갖추고 있었다. 이 매몰목 및 탄화목의 시료를 서울대학교 공동 기기원 질량 분석 가속기 연구실에 보내, 탄소 동위 원소(14C)를 이용한 연대 측정을 의뢰하였다. 그 결과 매몰목과 탄화목 각각 현재로부터 1030(±40)년 전과 1050(±40)년 전에 탄화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같은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약 1,000년 전에 백두산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은 막대한 양의 부석을 분출하여 백두산 주변의 산림을 덮었고, 화산재는 멀리 일본까지 날아갈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때의 화산 분출 사건을,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에 존재하였던 발해 왕국(699~926년)의 갑작스런 멸망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와 좀참꽃 군락>

천지

한라산의 백록담과 더불어 민족의 정기가 담겨 있는 천지는 가장 긴 직경이 4.6킬로미터, 둘레 14킬로미터, 수심 384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대한 화산 호수이다. 천지와 같은 큰 화구를 칼데라라고 하며, 이곳에 물이 차면 칼데라 호수라 부른다. 칼데라는 화구의 폭발로 인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화구 내부가 함몰되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천지도 백색 부석 분출 후 백두산 화구 내부에 형성된 거대한 지하 공간 때문에 상부가 함몰되어 형성되었다. 이후 오랜 기간 빗물이 고여 천지 호수가 생겨났다.
천지는 백두산 장군봉(2,750미터)보다 약 550미터 아래인 해발 2,200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천지의 물은 중국 쪽의 달문을 통하여 송화강으로 흘러 나간다. 천지에는 6월에도 빙하가 떠다니며 한여름에도 물이 매우 차서 맨발로는 오래 견디지 못할 정도이다.
천지가 함몰 칼데라라는 사실은 천지 내부에 형성된 백두산 외륜부의 지형으로도 알 수 있다. 장군봉을 비롯한 향도봉, 쌍무지개봉 등의 내벽은 거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절벽들은 화구 내부의 함몰에 의하여 형성된 것으로 해석된다.
천지의 해발 고도가 2,200미터이므로 이곳에서부터 백두고원 최고봉인 장군봉 사이에서는 물을 발견할 수 없다. 중국과의 국경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해발 약 1,950미터 지점에 압록강 발원지인 사기문폭포가 있다.
사기문폭포는 3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일 상부의 바위 틈새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천지의 수면보다 약간 아래에 위치하므로, 여기가 천지의 물이 지하수 이동에 의하여 처음 밖으로 나오는 지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천군바위>
<리명수 폭포 >

천군바위와 리명수폭포

사기문폭포에서 시작되는 압록강은 너비 1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실개천의 형태로 흐르다가, 백두폭포와 형제폭포를 거치면서 선오산 부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힘찬 물줄기를 이루게 된다. 소백산의 일부분인 곰산 부근에 이르면 압록강 계곡의 깊이는 50미터 이상으로 깊어지며, 빠른 물살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의 절벽면은 웅장하고 기묘한 풍화 지형을 형성한다. 이 형상이 1,000명의 군사가 도열해 있는 것 같다 하여 천군바위라고 한다.
자료에 의하면, 천군바위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서기 1700년경 화산 폭발 때 분출한 뜨거운 화산재가 압록강과 두만강의 곡지를 따라 흘러내려서 굳은 흑색 응회암이라고 한다. 층의 두께는 5미터 내외부터, 천군바위 일대는 70미터 이상이라고 한다. 흑색 응회암 내에는 백색 부석 파편이 다량 함유되어 있으므로 백색 부석이 형성된 이후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소백산 남쪽, 보천 가는 길 중간에는 현무암대지가 침식되어 형성된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데, 흐르는 물의 이름을 따서 리명수계곡이라 한다. 리명수계곡을 따라가면 높이 15미터, 넓이 30미터에 달하는 리명수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의 지형은 특이하게도 계곡과 평행한 서쪽 사면에 발달해 있는데, 폭포수가 상부의 암반 틈새에서 흘러나와 아래로 떨어지는 형태이다.







<천지에서 바라본 일몰>

살아 있는 백두고원


백두산은 우리나라 모든 산줄기의 시작을 이루는 모체이다. 산경표에 의하면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는 원리에 의해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누고 있다. 그 가운데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함경남도의 부전령, 황초령 등을 지나 태백산 줄기를 거쳐 소백산 줄기의 끝인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척추가 되는 중심 산줄기이다. 백두고원은 이러한 백두대간의 첫번째 산줄기를 구성하는 바탕이 된다. 백두산에서 소연지봉, 북포태산, 백사봉, 두류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용암대지 위에 솟은 화산 봉우리들은 끝없는 백두대간의 출발을 알리고 있다.
백두산은 지금까지 사화산이라고 알려져 왔으나,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화산 활동이 일시적으로 멈춘 휴화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약 1,000년 전에 백색 부석을 포함한 마지막 대규모 분출이 있은 뒤에도 최근까지 백두산 부근에서 크고 작은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조선왕조실록』 및 중국의 역사 자료에는 1413년, 1597년, 1668년, 1702년, 1712년, 1898년, 1900년, 1903년에 백두산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가장 최근인 1991년에도 중국 쪽 백운봉 근처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보고된 바 있다.
현재까지도 활발한 지각 운동을 보이는 이웃 나라 일본에 비해, 한반도는 지각의 운동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지금까지 제시한 자료에 의하면 백두고원은 예외가 된다. 제4기 이후에 발생한 단층을 제4기 단층 또는 신기단층이라고 부르는데, 백두고원에는 이러한 신기단층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백두산뿐 아니라 백두고원을 따라 놓여 있는 백두산 심부단열대의 여러 지점에서도 제4기 동안 지각의 움직임에 의한 단층의 증거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보천이나 백암 지구 등에는 신기단층 운동에 의한 제4기 화산암들의 변위가 관찰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과 최근 북한에서 보고된 지진 기록들을 볼 때, 백두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백두고원은 지질학적으로 아직도 살아 있는 지체 구조대이며, 남북의 학자들이 앞으로 협력하여 연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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