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대사전의 ‘문화어’ 정의
‘문화어’라는 말은 1966년 5월 14일 김일성 주석의 제2차 교시에서 처음으로 쓰인 말이다. 그러나 북한은 문화어의 역사적 근거를 항일 유격 투쟁이 한창이던 1930년대 초 김일성의 공청(공산주의 청년동맹) 사업에서 찾고 있다. 그는 사상 교양을 하면서 외래어나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제2차 담화(1966년)에서도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와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북한에서는 문화어 성립의 필연성을 언어가 사회주의 건설의 힘 있는 무기라는 데에서 찾고 있다. 언어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말이 쉬워야 하는데 중국식 한자말, 일본식 한자말, 외래어 등이 밀려 들어와서 언어가 도구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언어의 기능을 높이고 민족어의 자존을 되찾기 위하여 고유어가 바탕이 되는 문화어의 건설은 그들에게는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남한 말을 잡탕말이라고 한 것도 평양말을 문화어로 세우기 위한 일종의 구실인 셈이다.



문화어의 개괄적인 특징은 전통적인 평양말에 다른 요소가 더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양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혁명가들과 애국적인 인텔리, 근로 대중이 모인 곳이므로 여기에서 쓰이는 평양말은 계급적, 지역적 폐쇄성을 극복하고 가장 훌륭한 언어 요소들이 모여서 이루어 낸 혁명적으로 세련되고 문화적으로 다듬어진 우수한 말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어는 지역적으로 평양말에 바탕을 두었다고는 하나 전국 각 지역이나 모든 사회 계층의 언어 요소를 두루 포함하고 있어서 남한의 표준어와는 달리 결국 어떤 지역적, 사회 계층적 특성이 배제된 추상적, 가공적 언어라는 것을 그 특징으로 지적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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