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의 평양 진주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항복’을 선언했다.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은 이미 고갈되어 가고 있었고 미군의 원자폭탄 투여와 소련군의 참전이 종전을 앞당긴 것이다. 미국은 8월 6일과 8월 8일 두 번에 걸쳐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였고, 소련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지켜보면서 8월 8일 일본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소련 극동군은 총사령관 바실레프스키 원수의 지휘 아래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하고, 8월 9일에는 한반도의 북쪽 끝에 도착하였고, 12일에는 경흥, 웅기, 나진항, 청진항을 점령하였다. 이 때 미군은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군대가 일본의 남쪽에 있는 섬인 오키나와였기 때문에 소련의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점령을 막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다.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소련군은 빠르게 북한으로 진주하였고, 8월 23일부터 26일에 걸쳐 북한의 중심인 평양에 진주하였다. 평양에 북한 주둔 소련점령군 사령부를 설치한 치스차코프 사령관은 소련 극동군 제1극동전선군 군사위원 스티코프 상장의 지휘를 받아 정치공작을 담당하는 레베데프 소장(제25군 군사회의 위원), 로마넨코 소장(민정 담당 부사령관)과 함께 북한을 통치하였다.



소련군은 미군과는 달리 소련군정청을 설치하지 않고 간접 통치 방식을 썼는데, 군정청의 역할을 로마넨코 부사령관이 지휘하는 주북한 소비에트 민정기관에서 수행하였다. 이 기구는 김일성의 권력 장악과 유지를 뒷받침했으며, 소련 공산당에서 활동하던 허가이 등 200여 명의 한인 2세들을 북한으로 불러와 북한에서의 점령정책을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소련이 실시한 점령정책은 2차대전 후 동유럽의 동독과 폴란드에 공산주의 위성국가를 수립하던 경우와 일정부분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국가수립 과정에서 소련은 그들이 지지하는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게끔 지원하였고, 이 과정에서 북한 국가를 성립시킨 김일성 등 지도세력은 소련을 적극 활용하면서 순응하는 측면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당시 공산주의운동에서 소련이 절대적인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던 데 원인이 있으며, 김일성을 위시한 북한 권력지도부가 스탈린정권의 위력과 정치 행태를 잘 알고 있었던데 원인이 있다. 즉 소련은 한반도를 자신에 ‘우호적인’ 지역으로 만들고자 좌파세력의 헤게모니를 추구하였는데, 이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북한 사회주의 세력의 목표와도 일치점이 있었다.



소련군의 북한 점령은 3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소련의 정책 관철, 즉 소련의 정책을 반대하는 경우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둘은 소련의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셋은 각종 지원과 선전을 통한 조선인의 지지 및 실질적인 이익 획득이었다. 소련은 북한에서 드러내 놓고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정책 목표를 철저하게 관철하려 하였던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소련군의 정책은 일사불란하고 완전하게 수행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관철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련군의 정책은 다음 세 가지에서 잘 관철되었다. 첫째, 소련은 38선을 공식적으로 봉쇄하여 북한 지역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경의선을 끊고, 전화와 통신 그리고 사람과 물자의 왕래를 차단하였다. 둘째, 소련은 북한에 성립된 정치조직을 공산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해방직후 성립된 주도적 정치조직인 평안남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비공산계가 중심을 이루자 공산주의 세력과 비공산주의 세력 반반으로 구성된 평안남도 인민정치위원회를 조직 발족시켰다. 셋째, 소련은 스탈린이 특별 별장에서 직접 면접하고 북한에서의 활동을 적극 돕도록 지시한 김일성을 북한 지역의 지도자로 적극 지원하여 관철하였다. 소련은 만주에서 항일빨치산 투쟁을 하였지만 국내에 조직 기반이 부족하였던 김일성이 북한에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창설하고 우두머리인 책임비서가 되어 조직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1945. 12). 그리고 김일성이 북한지역의 임시 최고권력기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선출되도록 하였다.

이상과 같은 정책을 통해 소련군은 북한 지역에 대한 그들의 방침을 관철시켜 갔다.



<필자 : 이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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