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사 유적
 




 :: 상원 검은모루유적

상원군 상원읍 흑우리 검은모루에 있는 석회암동굴유적으로,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조사되었다. 대략 60만~40만년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이다. 이 유적은 구석기시대 석기 제작수법과 동물상의 발전, 자연환경 및 원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 상원 용곡동굴유적

상원군 용곡리에 있으며, 2개의 석회암 동굴이 발굴되었다. 석기나 화덕자리와 함께 10사람분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뼈화석이 발견되어 ‘용곡사람’이라 명명되었다.
 




 :: 덕천 승리산동굴유적

평남 덕천 승리산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람뼈로는 처음 발굴보고된 이 승리산유적에는 2종류의 인류화석이 출토되었다. ‘덕천사람’과 ‘승리산사람’의 두 자료가 있다. 유적 아래층에 나온 ‘덕천사람’은 중기 홍적세 말기~후기 홍적세 초기에 있었던 슬기사람 계통으로 보고 있다. 유적 윗층에서 나온 ‘승리산사람’은 슬기슬기사람에 속하면서 중국 주구점의 산정동인보다 더 오래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어, 이보다 더 이른 시기인 후기 홍적세 중기~말기에 살았던 35세 정도의 장년 남자로 분석되고 있다.
 




 :: 역포 대현동유적

석회암 동굴유적인 평양시 역포구역 대현동 유적에서는 ‘역포사람’이라고 불리우는 7~8세 가량의 어린아이 인골이 출토되었다. 이 화석은 슬기사람(Homo sapiens)에 해당된다.
 




 :: 평양 만달리유적

평양시 승호구역 만달리에 있는 석회암 동굴 유적으로 1979~1980년에 조사되었다. ‘만달사람’으로 명명된 머리뼈 일부 . 아래턱뼈 등 비교적 많은 사람뼈가 발견되었다. 2만년 전쯤의 문화시기로 해석하고 있다.
 




 :: 평양 남경유적

평안남도 평양시 삼석구역 남경부락에 위치한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치는 유적이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3년에 걸쳐 발굴조사되었다. 발굴된 유적은 신석기시대 집자리 5기와 청동기시대 집자리 22기, 청동기시대 무덤 5기, 철기시대 무덤 9기이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시대 농경 특히 도작의 기원을 밝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 평양 금탄리유적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으로, 1955년 발굴되어 10기의 주거지와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서북지방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 고조선 및 낙랑시대 유적
 




 :: 단군릉

평양시 북동쪽으로 38Km 떨어진 강동군 문흥리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릉은 1994년 10월에 1,994개의 화강석을 다듬어 9개의 단으로 건설한 것이다. 대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측근신하 8상과 단군의 아들 4상을 당시의 관직등급에 따라 차례로 배치하였다. 릉은 정4각형의 장군총을 모방한 형태이며, 밑너비와 길이는 각각 50m, 높이는 22m의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단군과 그의 부인의 유골을 안치한 두개의 관이 놓여 있다.
 




 :: 낙랑토성

평양 낙랑 구역 토성동에 있는 낙랑군의 치소로 추정되는 토성으로, 동서 약 660m, 남북 약 700m의 방형(方形)이다. ‘낙랑예관(樂浪禮官)’이란 와당이 출토되었고, 동정(銅鼎) . 동촉 . 동전 등과 봉니(封尼) 등 한(漢)나라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 낙랑고분군

평양 대동강 남쪽 토성리 . 정백동 . 정오동 일대에는 2천여기에 달하는 낙랑고분이 흩어져 있다. 무덤의 형식은 나무곽무덤 . 귀틀무덤 . 벽돌무덤 등이다. 주로 귀틀무덤에서 옥기(玉器) . 동기(銅器) . 토기(土器) . 도기(陶器) . 목기(木器) . 철기(鐵器) . 칠기(漆器) . 장신구 . 인(印) . 명기(明器) 등 풍부한 부장품이 출토되고 있. 대체로 이들 부장품은 중국 한(漢)문화를 대변하는 최고 수준의 유물들이며, 한편으로는 고조선 문화 전통을 계승하는 유물도 적지 않다.
 
:: 고구려 사찰 유적
 










< 평양의 주요 성곽 및 고분 유적 지도 >
고구려에는 372년(소수림왕 2)에 불교가 들어와 375년에 초문사(肖門寺) . 이불란사(伊弗蘭寺)가 창건되었고, 392년(광개토왕 2)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이 창건되었다. 또한 498년(문자왕 7)에 금강사(金剛寺)가, 영류왕 때는 영탑사(靈塔寺)와 육왕사(育王寺) 등 많은 절이 건립되었다. 지금까지 발굴되었거나 그 터가 알려져 있는 사찰은 평양의 금강사지(金剛寺址), 정릉사지(定陵寺址)를 비롯하여 광법사지, 상오리사지, 청호리사지, 영명사지, 중여사지, 낙사리사지, 암사리사지, 평천리사지, 대왕사지 등이다. 그 중 중요한 몇 절터를 살펴보자.
 




 :: 정릉사지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에 있는 동명왕릉에서 남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이 유적에서 ‘정릉(定陵)’, ‘능사(陵寺)’ 라 새긴 토기편이 발견되어, 정릉사지라 부르게 되었다. 1974년부터 발굴 조사된 이 사찰은 8각탑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북에 금당을 배치하고 회랑으로 둘러막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1탑 3금당식 가람배치를 보여준다. 조사된 절터는 남북 132.8m, 동서 223m의 규모이며, 건물터는 18개, 회랑터는 10개가 확인되었다. 이밖에도 더 많은 건물터와 회랑터가 있었겠으나 이미 파괴되어 원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창건시기는 5세기로 추정된다.
 




 :: 금강사지

평양시 대성구역 청암리에 위치하고 있다. 1937년에 발굴 조사한 결과 5세기에 창건된 금강사지에는 남향으로 중문(中門) 안에 팔각목탑이 배치되고 그 동서에 2개의 금당건물터가 있으며 북쪽에 3개의 건물터가 동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 상오리사지

평양시 대동군 상오리에 위치하며 청암리 금강사지 남동쪽으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38년 발굴조사에 의하여 팔각목탑건물지를 중심으로 구성된 고구려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 중흥사 당간지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1동에 있는 중흥사의 당간지주로 393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높이는 약 4m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의 하나이다.
 
:: 고구려 벽화고분
고구려의 고분 중 현재 벽화가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고분은 90여 기에 이르며, 주로 수도였던 국내(중국 길림성 집안)지역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대동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고분들은 위치나 규모, 벽화의 내용으로 보아 왕족이나 당시의 지배층의 묘로 추정하고 있다. 벽화고분은 크게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기는 4세기에서 5세기 초, 2기는 5세기에서 6세기의 중기까지, 3기는 6세기 후기에서 7세기로 구분한다.


평양 일대에서 1기의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안악 3호분을 비롯한 덕흥리고분을 들 수 있다. 이들 고분은 시신이 놓인 널방 이외에 앞방과 곁방이 있으며, 이들 방을 연결시켜주는 널길이 있는 구조이다. 벽화의 내용은 주로 주인공의 초상화와 생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데, 불교적인 영향이 곳곳에 보인다.
2기의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쌍영총 . 약수리고분 등을 들 수 있다. 앞방과 널방의 두방무덤이 주종을 이루며, 벽화의 소재도 주인공의 초상 위주에서 벗어나 풍속화적인 요소가 많고, 불교적인 취향이 짙어졌다.
3기의 대표적인 고분은 강서대묘 . 강서중묘 . 진파리 1호분 등이다. 널방과 널길 만을 갖춘 단칸방 형태로 되며, 벽화의 내용은 사신도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 사신도는 필치가 활달하고 생동감이 넘쳐 고구려인의 기개와 높은 회화 수준을 한껏 보여주고 있다.
 




 :: 덕흥리벽화고분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구려의 벽화고분으로, 1976년에 발견, 조사되었다. 풍부한 내용의 벽화와 600여 자에 달하는 묵서(墨書)가 있어 고분의 학술적 가치를 높여준다. 벽화 내용은 생활풍속도로 화려한 채식과 다채로운 소재는 안악 3호분에 버금간다. 주인공의 묘지명에 의하여 주인공은 영락 18년(408) 12월 25일에 안장되었음을 알 수 있고, 나아가서 이 고분의 축조연대를 알게 되었다. 이처럼 절대연대가 명문으로 남아 있어 5세기 초 고구려 고분의 구조나 벽화양식을 알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고분으로 평가된다.
 




 :: 동명왕릉

평양시 력포구역 륭산리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동명왕릉으로 전해져 왔으며, 북한에서는 발굴조사결과 동명왕릉으로 확정하고 있다. 그러나 평양천도를 단행한 장수왕릉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고분 앞에는 고구려시대의 사찰터인 정릉사가 있다. 1993년에 왕릉과 정릉사를 개건하였다.
 




 :: 강서대묘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이다. 무덤의 구조는 외방무덤이며 천장은 모줄임천장이다. 벽화의 내용은 사신도 및 장식무늬이며, 회칠을 하지 않은 잘 다듬어진 널방 돌벽면에 직접 그렸다. 널방 남벽의 입구 주변에는 인동 당초 무늬를 그려 장식하고, 좌우의 좁은 벽에는 주작을 한 마리씩 그렸으며, 동벽에는 청룡, 서벽에는 백호, 북벽에는 현무, 천장 중앙의 덮개돌에는 황룡을 각각 그렸다. 이 사신도는 그 구상이 장대하고 힘차며 필치가 세련되어 우리나라 고분벽화 중에서 극치를 이루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고분축조시기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로 추정된다.
 




 :: 강서중묘

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에 있는 강서 3묘의 하나로 강서대묘와 함께 고구려 고분벽화의 절정기 작품을 지니고 있는 벽화고분이다. 무덤의 구조는 외방무덤이며, 널방벽과 천장부의 석면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널방 벽화의 주제는 사신도이다. 강서대묘에 비하여 벽화 표현기법의 양식화가 뚜렷하고 묘실구조도 보다 간략화된 것으로 보아 7세기 전반경에 축조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 진파리 1호분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에 있는 외방 무덤이다. 벽화는 사신도를 비롯해서 벽화 전체에 생동감이 넘쳐 자유 분방하고 극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소나무 그림은 분방 활달한 선과 싱싱한 생동감이 담겨져 있다.
 




 :: 쌍영총

평안남도 용강군 용강면 안성리에 위치한다. 아름답게 장식된 두개의 팔각기둥을 가진 데서 무덤이름이 지어졌다. 앞방과 널방 사이의 통로의 좌우에는 아름답게 장식된 8각돌기둥이 하나씩 세워져 있어, 이 고분을 쌍영총이라고 이름지었다. 벽화의 내용은 인물풍속도 및 사신도이며 다양한 내용을 섬세한 선을 구사하여 세련된 기법으로 나타냈다. 특히, 현실 동벽에 그려진 공양도는 당시의 복식(의복과 장신구)을 엿볼 수 있다. 사신도는 전, 현실에 나누어져 청룡과 백호는 전실에, 주작과 현무는 현실에 그려져 있는데, 특히 청룡과 백호는 후기의 사신도와 흡사한 모습이다.
 
:: 평양성 일대의 유적
 




 :: 대성산성

평양시 대성구역 대성동에 자리잡고 있는 고구려의 산성이다. 해발 274m의 대성산은 주봉인 을지봉을 비롯하여 소문봉 . 장수봉 . 북장대 . 국사봉 . 주작봉 등 여섯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능선을 따라 산성을 쌓았다. 산성의 둘레는 7,706m이며 성벽의 총길이는 9,284m, 높이는 4~5m이다. 성벽은 2중구조로 돼 있고 성문은 본래 20개가 있었는데 남문이 정문이다. 대성산 남문은 복구되어 있다. 성안에는 식량창고와 무기고, 병영터, 각루 등 18개의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산성 남쪽에는 토성으로 둘러싸인 4각 형태의 안학궁(고구려 왕궁)터가 있으며 동남쪽에는 고구려 고분군이 자리잡고 있다.
 




 :: 안학궁성

안학궁성은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동에 위치하는 평지성으로 성곽의 둘레는 2488m이며, 넓이는 38만㎡에 달한다. 성의 형태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방형이다. 성벽은 돌과 훍을 섞어서 쌓았다. 성문은 6개소로서 남쪽에 3문이 배치되어 있고, 동,서,북에 각각 1개의 성문이 있다. 성의 동서쪽 성벽 밖으로는 해자를 둘렀다. 궁성안의 건물지는 52채로 총 건평 31,458㎡에 달한다. 특히 남쪽의 3개의 성문을 통하는 남북 중심축에 따라 3개의 큰 궁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또 각 중심 건물의 동서 축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평양 천도이후 586년(평원왕 28년)에 장안성으로 이거하기까지 왕궁성이었다.
 




 :: 청암리토성

청암리토성은 안학궁성과 장안성과의 중간쯤에 위치하며 대동강을 남쪽으로 끼고있는 낮은 구릉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성의 평면은 반달모양이며 성벽의 총 둘레는 5km이다. 성벽은 토축을 기본으로 일부 석축을 하였다. 동 . 서 . 북에 성문이 있는데, 서문은 장안성의 북문과 이어지고 있으며, 성의 동문에서 대성산성 남문으로 이어진다. 성의 중앙에는 498년(문자왕 7)에 세운 金剛寺로 추정되는 절터가 남아있으며, 그 동쪽으로는 남북으로 긴 낮은 대지 위에 초석이 남아있는데, 이곳에 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평양성

고구려는 552년(양원왕 8년)에 정치 . 경제 . 군사적으로 유리한 현재 평양의 중심지인 중구역과 평천구역에 걸쳐 도성을 축조하고, 586년(평원왕 28년)에 그곳으로 천도를 하였다. 이때 축성한 장안성이 곧 평양성이다. 이 평양성은 평지 . 구릉 . 강이라는 자연조건을 적절히 이용하여 동쪽으로 대동강, 서쪽으로는 보통강이 둘러싸고 있고, 북쪽으로는 높은 구릉지대가 방어상의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 성벽의 둘레가 16km, 총연장 23km에 달하고, 내성 . 중성 . 외성 . . 북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4개의 성문과 크고 작은 부속물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문은 대동문(내성의 동문) . 칠성문(내성의 북문) . 보통문(중성의 서문) . 전금문(북성의 남문) . 현무문(북성의 서문) . 정양문(중성의 서문) . 차피문(의성의 남문) . 다경문(외성의 서문)이다. 북성 구역에는 평양의 대표적 경승지로 꼽히는 모란봉 . 을밀대 . 연광정 . 부벽루 . 청류정이 자리잡고 있다.
 



:: 대동문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동문이다. 대동문은 대동강을 건너 남으로 통하는 평양성 성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문이었으며, 고려시대의 건축물을 계승한 조선 전기의 형식과 구조상 특징을 보여주는 성문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북한 국보급 문화재 제1호이다. 현재의 건물은 1635년(조선 인조13년)에 재건되었다. 대동문의 문루에는 ‘읍호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읍호’란 문루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가의 푸르고 맑은 물을 떠올릴 수 있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표현한 것이다.
 




 :: 보통문

평양성 중성의 서문으로 보통강기슭 천리마거리어구에 있다. 6세기중엽에 고구려 장안성 때 세워졌고, 그후 고려 조선에 걸쳐 여러 차례 고쳐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해방 후 본래 자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55m정도 옮겨지은 것이다.
 




 :: 현무문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위치한다. 현무문이란 이름은 사신중 북방 방위신인 현무에서 딴 것으로 북성의 북문으로 세워졌다. 현재의 문루는 1855년과 1954년 크게 개축한 것이다. 성문 밖에는 옹성을 좌우로 쌓아 성문 입구를 좁게 설계했으며, 고구려의 성문 형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칠성문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있는 칠성문은 평양성 내성의 북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칠성문은 1712년 조선시대에 다시 세운 문이다. 성문 옆엔 옹성을 쌓았으며, 임진왜란 평양성 전투 때 이 성문을 이용해 왜적들을 물리치고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 을밀대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을밀봉 밑에 있는 을밀대는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기능하는 정자이다. ‘을밀대’란 이름의 유래를 보면, 먼 옛날 ‘을밀선녀’가 기막힌 이곳의 경치에 반해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설화와 을지문덕 장군의 아들 을밀 장군이 이곳을 지켜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또 이 정자를 ‘사허정’이라고도 부르는데, 사방이 틔어 있어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조 1714년(숙종 40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 지은 것이다. ‘평양팔경’의 하나로서 ‘을밀대의 봄놀이’가 꼽힐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다.
 




 :: 련광정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 대동강변 덕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연광정은 ‘관서팔경’의 하나로서 꼽힐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고려때 김황원이 여기에 올라 한폭의 그림같은 아름다움에 시구 2구절을 짓고 시상이 막혀 한탄하였다는 그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명기 계월향이 왜장을 죽이고 평양성을 지키는 데 이바지하였다는 이야기를 비롯한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조 1670년(현종 11년)에 재건한 것이다. 두 채를 비껴 붙여 지은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건축미가 가장 뛰어난 대표적인 정자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최승대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의 최고봉인 모란봉에 있는 정자로, 평양성 북성의 북쪽 장대로 기능한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최고로 아름답다 하여 최승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714년 평양성 수리공사 때 이 자리를 10m 가량 돋구고 봉화대를 설치하였고, 조선조 숙종 42년인 1716년에 오승대란 이름으로 정자가 세워졌다.
 




 :: 평양종

대동문옆에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종각안의 종이다. 평양종은 1726년에 만든 것으로서 1890년대까지 평양사람들에게 비상경보다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종의 높이는 3.1m이고 너비는 1.6m이며 무게는 13톤 513kg이다.
 
:: 기타 유적
 
:: 대화궁(大花宮)터

평남 대동군 부산면 임원역(林原驛)에 지은 고려시대의 궁궐터이다. 묘청(妙淸) 등이 이곳에 궁궐을 세우면 금(金)나라도 항복해오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주청하자 1128년(인종 6) 에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공하여 대화궁이라 이름지었다. 1131년에는 임원궁성을 쌓고 팔성당(八聖堂)을 건조하였다. 현재는 문터, 내궁터, 외궁터 등 주변의 토루(土壘) 일부가 남아 있다.
 




 :: 영명사팔각석불감 永明寺八角石佛龕

평양 모란봉구역 개선동 영명사지에 있는 석불감으로 북한의 보물급 제6호이다. 을밀대와 최승대 중간에 있는 영명사는 392년(고구려 광개토대왕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1894년 청일전쟁 때 거의 불타버렸으며, 1922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석불감은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고, 석면에는 삼존과 사천왕 및 기타 조각을 새겼다. 석면 위에 옥개를 얹고 보주와 노반을 갖추었으나 현재는 없다.
 




 :: 숭령전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에 위치한 숭령전은 고조선의 건국시조 단군과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을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고려 때에는 동명성제사(東明聖帝祠), 조선조에서는 단군묘(檀君廟)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1725년 영조 원년에 숭령전(崇靈殿)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조선 순조 4년 평양성안의 큰 화재로 숭령전도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었다. 숭령전은 그 건축에 있어서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낸 건물로서 구조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화려한 살미 조각으로 특색을 띤 귀중한 건축 유물의 하나다. 6 . 25 때 파괴되었다가 1955년에 옛모습대로 보수하였다.
 




 :: 숭인전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 평양학생소년궁전 옆에 숭련전과 나란히 서 있는 숭인전은 고려말기의 사당으로서 1325년에 세운 평양에서 제일 오랜 건물의 하나이다. 본래는 중심건물인 정전을 비롯하여 10여채의 부속건물들이 있었으나, 6. 25때 부속건물은 파괴되었다. 숭인전의 정전은 고려시대의 뛰어난 건축술과 예술적 재능을 보여주는 보물급 유적이다.
 




 :: 용곡서원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봉리 룡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룡곡서원은 1656년에 처음 세웠졌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171년에 중건한 것이다. 룡곡서원은 《태극변해》.《성리서》.《역학설》등의 도서들과 문집 《돈암전서》의 저자인 이 지방 출신의 유학자 돈암 선우협(1588~1653)을 모신 서원이다. 용곡서원이 자리잡은 용악산은 평양팔경의 하나로 꼽혀 ‘용산마취’라 부른다.
 
:: 오순정 五詢亭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萬壽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북한 보물급 3호이다. 정자의 구조는 L자형이며, 모두 3칸으로 되어 있다. 원래 1707년(숙종 33)에 평양 감영의 정원에 있는 망월지(望月池)에 건립하였으며, 193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평양문화재]
1.국보급문화재
































































































































  문화재명 위치 창건시대 비고
1 대동문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문루는 1635년 재건립
2 보통문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   1473년 개수, 1944년 복구
3 대묘 강서군 삼묘리 고구려시대  
4 중묘
강서군 삼묘리
고구려시대
 
5 소묘
강서군 삼묘리
고구려시대
 
6 약수리벽화고분
강서군 약수리
고구려시대
 
7 연화총
강서군 태성리
고구려시대
 
8 태성리 1호분
강서군 태성리
고구려시대
 
9 태성리 2호분
강서군 태성리
고구려시대
 
10 용강대총
용강군 용강읍 진지동
고구려시대
 
11 대안리 1호분
용강군 대안노동자구
고구려시대
 
12 쌍영총
용강군 용강읍 진지동
고구려시대
 
13 수렵총
옹천군 화도리
고구려시대
 
14 감신총
온천군 신녕리
고구려시대
 
15 성총
온천군 신녕리
고구려시대
 
16 점선비
온천군 성현리
낙랑(178년?)
 
17 진파리벽화고분
중화군 무진리(진파리)
고구려시대  
18 동명왕릉
중화군 무진리
고구려시대  
19 천왕지신총
은산군 북창리
고구려시대  
20 요동성총
순천군 용봉리
고구려시대  
 
2.보물급문화재






























































  문화재명 위치 창건시대 비고
1 평양종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
1716년 주조
 
2 숭인전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
1325년(고려)
1428년 개수,
1954년 복구
3 오순정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
1707년(조선)
 
4 칠성문
평양시 모란봉구역
철성문통
   
5 홍복사 6각7층탑
평양시 모란봉구역
중앙역사박물관 앞
   
6 영명사 8각석불탑
평양시 모란봉구역
영명사터
고려초기
 
7 중흥사 당간지주
평양시 모란봉구역
인흥2동
고구려시대
 
8 안국사
순천군 봉학역
  현 건물은 1786년 재건
9 자복사 5층탑
성천군 성천읍
고려시대
 
 
3.사적문화재












































































































































  문화재명 위치 창건시대 비고
1 평양성
평양
고구려시대  
2 외성
평양
   
3 내성
평양
   
4 북성
평양
   
5 금전문
평양시 모란봉구역
금수산
1714년(조선 숙종) 1959년 복구
6 청류정
평양시 모란봉구역
1716년(조선 숙종) 평양내성 서문을 1927년 현 위치로 이전.
1959년 복구
7 안학궁터
평양시 모란봉구역
고구려시대
 
8 대성산성
평양시 대성산 대성구역
고구려시대
 
9 청암리 토성
평양시 대성산 대성구역
고구려시대
 
10 금강사터
평양시 청암동 대성구역
고구려시대
 
11 대성산부근
고구려고분군
평양시 청암동 대성구역
고구려시대
 
12 약수리 토성
평양시 토성동 낙랑구역
   
13 미림리 원시유적
평양시 미림동 시동구역
신석기~청동기
 
14 금탄리 원시유적
평양시 사동구 금탄리
신석기~청동기
 
15 강서 삼묘리고분
강서군 삼묘리
고구려시대
 
16 석천 고인돌
용강군 용강읍 석천리
   
17 황룡성
용강군 옥도리 오적산
고구려시대
 
18 궁산 원시유적
온천군 운하리
   
19 어을동토성
온천군 성현리
낙랑시대
 
20 한왕묘
강동군 한왕리
고구려시대
 
21 자모산성
순안군 어중리 자모산
고구려시대
 
22 정진사
성천군 향풍리
  현건물은 1781년 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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