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조각·판화
북한은 민족적인 ‘조선화’를 모든 미술의 중심으로 가장 존중하고 있으나 서양에서 들어와 정착된 유화도 당 정책에 맞게 요구하며 존중하고 있다. 역시 서양미술에서 배운 사실주의 조각과 여러 기법의 판화도 주체미술 내지 주체사실주의에 충실하는 조건에서 모두 발전하게 하고 있다. 곧 유화·조각 등도 모두 조선화의 민족적 특성을 본받은 ‘우리식’으로 창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유화에서는 유채의 질감과 색상 및 사실적 선명성이 조선화에 못지 않은 부드러운 ‘조선화식 유화’를 지향하게 하였다. 『김정일 미술론』(1992, 조선로동당출판사)에는 다음과 같이 언급돼 있다.
“미술을 조선화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시킨다고 하여 유화를 홀시하여서는 안된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유화는 서양화로서의 공통적인 기법을 가지고 있지만 나라마다 일련의 특징이 있다. …유화를 우리 인민의 기호와 감정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은 미술에서 주체를 세우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로 된다.”
그러나 유화와 조각에서 철저하게 배격되고 있는 것은 남한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현대적 추상주의와 자유로운 표현주의의 수용 또는 추종이다. 1966년에 이미 김일성 교시로 그 문제가 명확히 경고되었다.
“지금 서방 제국주의 나라들과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그림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가 판을 치고 있는 조건에서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주아 사상 조류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밀려들어오지 못하도록 강하게 투쟁하여야 한다.”(담화문 〈우리의 미술을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미술로 발전시키자〉)
그 투쟁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현재도 북한에서는 ‘추상화’를 비롯한 서방식의 현대적 미술행위는 절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체미술 총서’『주체미술건설』(김교련, 1995)의 「반동적 미술조류와의 투쟁」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김정일 동지의 지적’이 제시돼 있다.
“우리는 창작 실천에서 형식주의적 경향(추상화 등 =필자 주)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그 자그마한 표현에 대해서도 절대로 융화묵과하지 말고 투쟁을 벌려야 한다.”
<필자 : 이구열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