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하생경변상도(고려시대, 일본 지은원 소장)>


 


 


연등회가 순수한 불교적인 행사였다면, 팔관회는 연등회보다는 공식적인 국가의례의 성격이 강하였다. 팔관회 전날인 13일에는 재상과 문무백관에서부터 악공에 이르기까지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사장인 의봉루 앞마당 즉 구정에 모여 행사 진행과정을 연습했다. 팔관회 행사에 참여하는 신하와 외국 사절들이 국왕에게 표문을 올리는 장소나 국왕에게 절을 올리는 장소는 태자를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배치나 행사진행이 너무 복잡하여 원만한 행사진행을 위해서는 연습이 꼭 필요하였다.


팔관회에서는 14/15일 양일 모두 연회를 베풀어 신하들과 외국 사신들로부터 조하를 받는 행사를 했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구정에 마련된 행사장은 찬방(饌房)과 다방(茶房)의 휘장을 동.서편에 각각 설치하고 큰 황룡기 2개를 앞마당 양쪽에 꽂아두는 것을 제외하고는 연등회 행사장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군신간에 술과 음식을 나누는 연회가 팔관회 행사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찬방과 다방을 특별히 행사장에 설치한 것이었고, 황룡기를 꽂음으로써 고려가 천자국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14일 아침 해뜰 무렵 의장대가 구정에 정렬하고 각종 일산ㆍ부채ㆍ위장들을 대관전 뜰에서부터 의봉루 사이의 좌우에 늘어놓았다. 3,000여명의 의위사들이 가지각색의 화려한 깃발과 무기를 들고 왕이 행차하는 길을 따라 좌우로 도열함으로써 궁성안은 화려하고 엄숙하기 그지 없었다. 연등회 때와는 달리 왕은 신하들의 인사를 받은 후 연등회 때와는 달리 왕만 의봉루에서 태조의 영전에 진헌하여 팔관회 개최를 유훈으로 남긴 태조를 기렸다. 태조의 영전에 진헌하는 행사가 끝나면 본행사인 연회가 시작되었고, 연회가 끝나면 왕은 궁궐 동북쪽에 위치한 법왕사(法王寺)로 행차하였다. 법왕사에서는 고승들을 초빙하여 법회를 열고 불경을 설하여 부처의 가피를 입어 민심이 편안하고 대외관계가 안정되기를 기원하였다.

팔관회에서는 14, 15일 양일에 걸쳐 각각 연회가 열렸는데, 연회에 앞서 신하들의 조하를 받는 순서가 있었다. 이 행사는 팔관회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로 팔관회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14일에는 중앙관리들이 왕에게 조하를 올리고, 지방관리들이 지표관을 보내어 표문을 올렸다. 15일에는 외국인들로부터 조하를 받았다. 조하의식이 끝나면 연회가 열렸다. 왕은 음악이 연주되는 속에서 팔관회에 참석한 모든 들에게 술, 약, 과실, 꽃, 음식을 하사하였다. 이 행사는 단순히 연회라고 하기에는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엄격하였다. 이것은 팔관회라는 행사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철저한 위계질서를 표현하는 것임을 뜻하였다. 그렇다고 팔관회 행사가 엄격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 황제를 위한 만세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속에서 각종 음악이 연주되었으며 춤과 백희들이 공연되었다.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지면 구정에 달아두었던 커다란 윤등(輪燈)과 사방에 달아둔 향등(香燈)에 불을 밝혀 밤을 낮처럼 환하게 하였다. 그리고 밝은 가을달 아래 군신이 함께 취하고, 백성들은 각종 공연을 구경하며 함께 즐겼다.

이처럼 팔관회는 고려와 고려왕의 위상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의례를 통해 군신 상하간의 위계를 분명히 하고 국왕을 정점으로 국가의 질서체계를 엄격하게 하려는 행사로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엄숙하면서도 연회와 밤새도록 계속된 행사들로 평상시와는 다른 환락적인 분위기도 연출하였다. 팔관회는 관민동락의 계절축제의 성격도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만큼 자유분방한 난장의 모습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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