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⑮ “어머니와의 마지막 이별, 평생 죄책감으로 남아” (2021.02.15)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이두희 할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중화군입니다. 평양이 지척인 곳으로 학교를 평양에서 다녔습니다. 밑으로 두 동생이 있었지만, 나이 차이도 있고 학교에 다니느라 동생들과 친해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올해 89세의 이두희 할아버지가 피란길에 오른 것은 17세 때였습니다. 결혼한 형과 어린 동생 둘. 그리고 어머니까지 6명이 함께 고향을 떠났습니다.

■”다 살자고 다 죽을 순 없다”…피란길에 헤어진 어머니와 동생들

사리원쯤 닿았을 때 사리원 성당이 폭격에 무너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그날 저녁상을 물리며 형제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식구가 떨어져야 한다. 다 살자고 다 죽을 순 없다’. 그러면서 이두희 할아버지에게 ‘형을 따라서 이남에 가겠느냐. 아니면 여기 떨어져 나와 가겠느냐’ 물어보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형님과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10살, 6살 된 동생들은 형들 눈치를 보며 대답을 못 하다가 어머니 치마 뒤로 숨었습니다. 쏟아지는 피란민 대열에 휩싸여 어머니와 동생들 모습이 사라져 갔고, 그 길로 가족은 흩어지게 됐습니다.

■”달력에 내 생일은 없습니다”…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아

그때 든 생각이 ‘아, 살았구나’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별은 이두희 할아버지의 마음에 평생 죄책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안 가시면 저도 못 갑니다’ 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효심이 없어서, 형 노릇을 제대로 못 해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피란길에 두고 왔다는 미안함입니다.

그 후로 지난 70년 동안 할아버지는 본인의 생일을 차리지 않습니다. 그 좋아하던 노래도 이젠 부르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즐기는 건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기도를 드립니다. 이북에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안녕을 빌며 한자리에 모여 가족의 사랑을 나눌 날이 빨리 오기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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