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70년기획]⑭ “금강산에서 봤던 적송 묘목 한 그루 북한 땅에 심고 싶습니다” (2021.02.14)

 
 
편집자 주 :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여 년이 지났습니다.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재회하지 못한 이산가족이 5만 명이 넘습니다.
만날 수 있다는 기대도, 시간도 하루하루 희미해져 가는데요.
설을 맞아 그분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차로 불과 10분 거리인데”…언제라도 달려가려 지척으로 이사 온 할아버지

강원도 고성에서 차로 불과 십 여분 거리에 있는 북한 고성 수동면이 고향인 엄택규 할아버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고향인 수동면이 보입니다. 하지만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눈으로만 봐야 하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3남매의 막내로 어머니와 단둘이 남쪽으로 내려온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진즉에 전해 들었지만, 형과 누나의 소식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고향이 가까운 만큼 그곳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아 한걸음에 달려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부러 이곳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고향 수동면은 강원도 중 유일하게 바다에 면해 있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맑은 강이 흘렀고 강물이 반짝이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동생 주려고 사탕을 남겨오던 일도. 가장 뇌리에 남아 있는 건 아버지가 어린 자신을 데리고 갔던 외금강의 신계사에서 본 적송 숲입니다.

“절 뒤로 돌아가니 붉은 소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거야. 한두 그루가 아니라 빽빽하게 숲을 이루며. 어린 눈으로 봤으니 그 얼마나 컸겠어. 장관이었지.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

■”형제 있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요”… 고향 땅에 묘목 한 그루 심을 수 있기를…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외아들로 자란 할아버지는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에 말썽도 많이 피우고, 반항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타향살이하는 것, 원양 어선을 타고 밖으로 떠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년 전부터 다시 고성에 돌아와 숲 가꾸는 일을 합니다. 마치 아버지에게 이끌려 고향에 오듯.

“치고받고 싸워도 형제가 있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어. 전쟁 때문에 가족과 헤어졌다는 게 원망스럽고. 상의할 사람이 있어야지. 혼자 판단을 내리니 항상 옳은 건 없어, 항상 삐뚤어지는 거야”

나무들이 서로 어울려 숲을 이루고, 한 곳에 꿋꿋하게 뿌리내리는 것을 보며, 고향에서 형제들과 일가를 이루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는 할아버지. 자신이 실향민이고, 형제 없이 홀로 살아왔기 때문일까요. 그래서인지 금강산에서 봤던 적송 묘목을 고향 땅에 심는 게 간절한 소망입니다. 고향에서 못다 한 자신의 시간을 대신해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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