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체육지도위원회와 올림픽위원회
북한의 국가 체육지도위원회는 처음에는 남한의 대한체육회처럼 정부기구가 아니었다. 해방이후, 조선체육회와 별도로 북한에는 북조선체육동맹이 생겼다. 북조선체육동맹은 1947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교육국 체육부 산하의 민간단체로 등록되어 있었고 이름을 북조선체육위원회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북조선체육위원회는 산하조직 결성에 나서 도급, 시급, 군급의 조직을 확대하고 공장이나 직장에 하부 조직을 만들면서 1947년 말 산하에 4,141개의 하부조직과 16만9400명의 회원을 확보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체육회, 체육연맹 혹은 체육위원회라는 명칭은 다르지만, 세계 각국은 축구·배구·농구 등 각종 종목의 대회를 주관하고 선수를 선발하며 경기규칙을 감독하기 위해서 조직을 갖고 있고 각 종목의 조직을 하나로 묶는 조직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는 현재는 대한체육회가 그 역할을 하며 독일은 독일올림픽체육회, 호주는 호주체육회 등 이름도 조금씩 다르고 정부조직인지, 완전히 민간단체인지에서 차이가 있다. 체육회조직은 그 밑에 경기종목단체(예를 들면 대한축구협회와 같이 북조선축구협회 등)를 거느리게 된다. 북한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국가수준의 체육조직은 여러 종목을 망라하여 대회를 관장하고 종목보급을 하는 외에도 종목별 선수의 발굴과 양성(북한식 표현으로 스포츠 ‘선수 등급 소유자’ 육성), 그리고 스포츠교수 및 훈련의 선진화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1989년 북한의 중앙행정조직에는 국가체육위원회라는 비상설 기구가 있고, 여기서 국가대표를 파견할 것인지 체육관을 지을 것인지 등에 대한 정책사항을 다룬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당시에도 조선체육지도위원회는 각 종목경기단체의 통합기구로 별도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조직이 내각의 조직인 국가체육위원회로 바뀌게 된다. 1989년 김정일의 〈체육을 발전시킬 데 대하여〉에 따르면 조선체육지도위원회가 기존의 국가체육위원회의 의사결정 역할까지 장악하고 권한을 더 갖게 되며 이름도 ‘국가체육위원회’로 개칭할 것이 나와 있다. 이는 곧 국가체육위원회가 각 종목별협회나 체육단체를 국가기구로 연결시키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1983년 당시 체육지도위원회는 노동당 중앙위원회로부터 지도 및 감독을 받으면서 경기단체를 감독, 지도하는 4국과 1 연구소, 1 간부양성소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내각의 한 부처가 되면서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밑에는 행정조직인 12개의 국(局)과 30개의 경기종목협회가 들어있다. 체육지도위원회 산하에 있는 국의 명칭을 보면 재정국, 계획국, 대외사업국, 후비양성국, 군중체육국, 기술지원국, 지방지도국, 교육국 등이다. 여기서 후비양성국은 엘리트선수를 선발하고 육성시키는 것을 전담하는 것이며 군중체육국은 생활체육을 지원하는 곳이다.
체육지도위원회 산하의 북한 경기종목협회로는 축구연맹, 권투협회, 농구협회, 럭비협회, 레슬링협회, 배구협회, 사격협회, 수영협회, 피겨스케이팅협회, 스키협회, 아이스하키협회, 역기협회, 요트협회, 유술협회, 육상협회, 빙상협회, 자동차협회, 자전차협회, 정구협회, 체조협회, 카누협회, 태권도협회, 펜싱협회, 탁구협회, 낙하산체육협회, 궁술협회, 야구협회, 골프협회가 있다.
내각의 체육지도위원회는 1997년 내각 체육성으로 개칭하여 체육성이 된 적도 있지만 2000년 이후 다시 체육지도위원회란 명칭을 쓰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올림픽위원회가 독립된 조직체로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각 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과 같은 급으로 올림픽위원장을 임명한다. 때로는 내각 체육지도위원회위원장이 올림픽위원회위원장을 겸직하기도 한다. 북한의 올림픽위원회가 주로 하는 일은 국제올림픽위원회( IOC)가 주관하는 올림픽대회에 북한선수단을 파견하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주관하는 활동에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