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 >
<류경과 기생>
한말에 대원군은 “조선에 커다란 병폐가 세 가지 있으니, 이는 충청도 양반과 전라도 아전, 그리고 평안도 기생”이라고 했다. 여기에 평안도 기생이란 곧 평양의 기생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좋다.


그러면 왜 하필 평양 기생이 최고 집권자에 의해 나라의 병폐로까지 꼽혔을까? 이미 조선시기에 평양은 첫손가락 꼽는 색향(色鄕)으로 이름이 높았다. 예전에 개성은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많아 송도(松都)라고 불렀고, 평양은 흐드러진 유흥을 상징하는 버들이 많아 유경(柳京)이라 불리었는데, 그 때문인지 개성에는 절개를 지키는 과부가 많고, 평양에는 풍류가 넘치는 기생이 많았다고 한다.
 








< 평안감사향연도 부벽루연회(국립중앙박물관) >
평양에는 명기도 많아서 서울로 선발되어 올라가는 기생을 주로 공급하는 곳이었다. 그러면 평양의 기생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18세기에는 80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16세기말 기생안에 의하면 180여명이었다고 하니 가히 8도의 색향(色鄕)이라 할 만하다. 평안감사로 임명되어 도임하는 날에는 곱게 꾸민 기녀들 200여명이 모두 나와 길가에 죽 늘어서서 영접을 하니 마치 꿈속에서 도원경을 지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평양은 대동강가의 경치가 일품이고 어여쁜 기생도 많아,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른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따라서 평양하면 우선 떠오르는 이미지가 기생과 풍류인 것이다. 이처럼 평양 기생이 유명해진 연유는 중국과 조선의 사신들이 오가던 길목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평양 기생의 여러 모습>
나라에서 관리하는 기생은 대개 인물이 곱고 재주가 있는 천민 소녀들을 골라 기녀 양성소인 교방에서 교육시켰다. 기생들은 공식적으로 1년에 백미 한 섬을 연봉으로 받았지만, 이보다 양반들의 연희에 불려가 봉사하고 받는 전두나 몸을 팔아 버는 해웃값이 주된 수입원이었다. 따라서 풍류를 즐기는 양반들 중에는 기생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특히 평양 기생이 유명한지라 평양기생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이야기가 여럿 전해온다.
 








< 부벽루와 기생 >
부호의 아들로 허랑방탕한 이춘풍이 주색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였으나, 현명하고 합리적인 아내의 노력으로 바른 생활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를 갖는 이춘풍전이나 향생 이서방이 재산을 기생에게 빼앗기는 내용을 갖는 소설들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영락한 사대부를 사랑하고 입신시킨 기생을 그린 옥단춘전(玉丹春傳)에 나오는 것과 같은 기생 이미지도 없지는 않다. 또한 임진왜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 김응서(金應瑞)의 애첩으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장을 속여 김응서로 하여금 적장의 머리를 베게 한 뒤 자결하였다는 계월향은 의리와 정절의 상징이다. 후일 시인 한용운은 “나는 황금의 소반에 아침 볕을 받치고 매화 가지에 새봄을 걸어서, 그대의 잠자는 곁에 가만히 놓아드리겠습니다.” 라고 그녀를 기리고 있다.
 








< 주유청강(舟遊淸江) – 신윤복, 간송미술관 >
그러나 역시 풍류와 사랑을 그린 한 줄 시구로 그 이름을 전한 기생들이야말로 기억해볼 만하다. 선조 때 시재(詩才)에 뛰어나 천재의 칭송을 받았던 백호 임제(林悌 1549~1587)와 화담을 나눈 평양 기생 한우(寒雨)를 먼저 꼽을 만하다. 한우와 함께 술잔을 나누던 임제가 슬쩍 한우의 마음을 떠본다.


북창(北窓)이 맑다커늘 우장(雨裝)이 업시 길을 나니
산(山)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 비 맛잣시니 얼어 잘까 하노라



그러자 한우는 짐짓 그 마음을 모르는 척하면서도 은근한 애정을 드러낸다.


어이 얼어 자리 므스 일 얼어 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이쯤되면 개성 명기 황진이의 무덤에서 애석의 한을 토로하던 임제도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영조 때의 유명한 평양 기생이었던 매화(梅花) 역시 절창을 남긴다.


매화 옛등걸에 봄철이 돌아온다
옛피던 가지마다 핌 직도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하여라



길거리 버들이나 담밑의 꽃같은 기생들로 이름난 평양, 그 화려한 뒤안길에는 나이가 들어 시들어가면 버려지는 서글픈 꽃, 기생들의 회한도 흐르고 있었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