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지만, 그 멋진 자연 풍광으로 인하여 많은 시인묵객들의 찬탄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런 만큼 평양을 그린 그림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또 지도를 그리더라도 절로 멋진 풍경화가 되게 마련이다. 현재 남아있는 그림이나 지도는 그리 많지 않지만, 대표적인 몇 점을 감상해보아도, 평양의 아름다운 옛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 평안감사향연도 부벽루연회 >












< 평안감사향연도 연광정연회 >












< 평안감사향연도 월야선유 >
<평안감사향연도 平安監司饗宴圖 >
전 김홍도(1745~1806). 지본채색, 71.2×196.6cm(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평안감사향연도>는 <부벽루연회도 浮碧樓宴會圖> < 연광정연회도 練光亭宴會圖> <월야선유도 月夜船遊圖>의 3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그의 화풍을 따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평안감사의 부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대동강변에 모여든 환영 인파들과 주위의 풍광들과 건물들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며, 더욱 행사 장면을 주로 하면서도 주위의 구경꾼까지 다양하고 폭넓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풍속화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 부벽루연회도 :
부벽루의 야외에서 벌어진 연회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순간을 잡아냈다. 앞마당에서 한창 흥을 돋구고 있는 무용수와 악사의 모습에 보는 이도 절로 흥이 겹다. 연회장 주변에는 구경꾼이 늘어서 있는데, 갖가지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이 인상적이다,


# 연광정연회도 :
평양의 8경 중의 하나인 대동문과 연광정의 풍광을 배경으로, 평안감사를 중심으로 행사의 모습과 그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이 눈에 띈다,


# 월야선유도 :
밤에 횃불을 밝히고 대동강에서 벌어진 행사장면을 그렸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성곽과 강변에 횃불을 들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乙蜜償春
을밀상춘
(을밀대의봄놀이)
永明尋僧
영명심승
(영명사의 승려를
찾아)
浮碧玩月
부벽완월
(부벽루의 달맞이)
愛連聽雨
애련청우
(애련당의 빗소리)
















菩通送客
보통송객
(보통문의 손님
보내기)

馬灘春張
마탄춘장
(마탄나루의 봄물결)

龍山晩翠
용산만취
(용산의 짙은 녹음)

東門泛舟
동문범주
(대동문밖의 뱃놀이)

<평양팔경도 平壤八景圖>

작자 미상. 79×45.5cm, 종이 채색.


평양 대동강변의 경치는 옛부터 절경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런 경치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골라 꼽은 여덟 곳의 아름다움을 ‘평양8경’이라고 하는데, 이를 8 화폭에 담은 것이 <평양팔경도>이다. 을밀대, 영명사, 부벽루, 애련당, 보통문 등 옛건물이 자리잡은 주변의 경치와 마탄나루, 용악산, 대동강의 풍광이 각각 한폭에 그려졌으며, 그에 따르는 제화도 함께 쓰여있다. 단순히 자연 풍경만이 아니라 이를 찾아 즐기는 사람들도 함께 그려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림 속의 인물과 더불어 그 경관을 즐기게끔 한다.
 
<해동지도(海東地圖)의 평양부 지도>
18세기 중엽, 채색필사본. 18세기 중엽. 66.0 * 48.0cm.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영조 대에 만들어진 군현지도첩인 <해동지도>에 수록된 평양부지도이다. 대동강과 보통강이 둘러싸고 있는 평양성을 중심으로 평양부 행정구역 전체 범위에 해당하는 도성 외부 지역가지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평양의 내부 시가지 모습 다 담아내지 않고 주요 건물과 관아건물 등만 표시한 점은 조선후기에 군현지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군현지도는 회화적 성격과 지도적 성격이 혼합되어 있어, 동일한 축척으로 그리지 않고, 행정의 중심지인 읍치는 크게 확대해서 그리고 나머지 주변지역은 소축척으로 압축해 그리기도 하며, 당시 지방통치에 중요한 사항들이 우선적으로 선택되고 그렇지 않은 요소들은 생략되기도 한 것이다. 이 평양부 지도에는 단군전, 기자사, 대동관, 향교 등의 위치가 잘 드러나, 다른 평양지도의 건물을 확인하는 대조 자료로서 이용가치가 높다. 다만 평양의 성곽 중 외성과 중성을 가르는 내부 성곽이 그려지지 않은 점이 독특하다.
 








< 평양성전도(북성) >
<평양성전도 平壤城全圖>
19세기, 122.5×*405cm, 종이 담채


이 그림은 19세기 평양성의 전경과 성 안팎에서 벌어지는 성민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대동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문, 연광전 부근의 광경이나. 북성 안에 있었던 영명사의 본래 모습을 되살려 볼 수 있는 그림이다. 매해 4월 초파일부터 단오까지 벌어졌다는 석전(石戰)과 대동강에서의 물고기잡이 , 그리고 능라도에서 춤과 노래로 즐기는 장면과 감사의 행렬까지 이 그림에 담고 있는 내용을 찬찬히 보면 당시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상과 풍속을 눈에 보는 듯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에서 군현지도의 경우는 지역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평양과 같은 군현지도의 경우 회화식 지도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 준다. 마치 전통적인 산수화처럼 그려져 있으며, 병풍이나 족자로 장정되어 예술품으로 감상되기도 하였는데, 본 평양성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 평양도>
<평양도>
19세기,


이 그림은 평양의 전경을 굽어본 형식으로 펼쳐보이고 있다. 오른쪽에 솟은 대성산과 대동강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이 실감있게 묘사되었으며, 성곽과 건물들, 정연한 도로망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대동강 선창에 닻을 내린 짐배들과 강심에 떠있는 돛배들, 전통적인 민속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인상적이다. 대담한 생략으로 중요 대상들을 함축하여 드러냈으며, 화면에 정서적 분위기가 넘쳐나게 한다. 지형도와 같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회화적 기량에서 미숙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 평양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기성전도 >
<기성전도(箕城全圖)>
규장각 소장(古軸 4709-12), 채색 필사본, 세로2(도폭) : 167, 가로2(도폭) : 96


제작시기는 1881년(고종 18)에 세운 서묘(西廟)와 1804년에 화재로 불탔다가 1890년에 중건한 애련당(愛蓮堂)이 있고, 갑오개혁 이전의 관아 명칭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1890년~1894년경으로 추정된다. 기성(箕城은) 기자(箕子)와 관련된 전승에서 비롯된 평양의 다른 이름이다.

geo_321_15_04-1.jpg(15.62Kb)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