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 <개선문의 아침>


김일성의 미술 관계 교시와 주체주의


 



북한에서 주체미술의 논리를 낳게 한 주체사상의 발단은 1955년의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대회에서 김일성이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을 통해 역설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 사상’으로 불리기도 한 그 주체사상은 북한 사회주의 혁명의 독자적 지도이념으로 발전하며 모든 분야가 ‘주체’를 앞세우게 하였다. 그것은 당성·노동계급성·인민성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일성의 모든 교시는 당의 지도방향으로 직결되었다.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의 미술’을 요구한 1966년의 교시에 앞서 1964년에 교시된 “혁명적 문학예술을 창작할 데 대하여”에서의 다음과 같은 언급의 지침도 그렇게 실행되었다.


 


“나는 사회주의 건설에 관한 문예작품과 혁명투쟁에 관한 문예작품의 창작 비율을 5대 5로 제기한다. 그리고 혁명투쟁에 관한 것은 북조선의 것을 4, 남조선의 것을 1 정도로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김일성 교시는 미술 창작에서도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투쟁, 수령의 우상화, 그리고 남한의 공산화 혁명 촉구까지를 혁명적인 본분으로 삼게 하였다. 당이 그 지침을 철저하게 받들어 전국적 조직의 조선미술가동맹 맹원들의 작품활동과 각종 전람회, 평양의 만수대창작사를 비롯한 전국 시·도의 미술창작사, 그리고 평양미술대학의 미술가 양성과 인민군 및 공장·기업체 미술소조 등의 각종 미술활동을 통제하는 정책을 썼다.


1970년대에 접어들어 김정일이 그 지도에 적극 앞장서며 ‘주체미술의 대전성기’를 이룩하였다는 성과의 구체적 실상은 단적으로 이런 내면이었다.


 


“미술가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와 고매한 덕성,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적 가정을 반영한 작품들,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불같은 충성심을 반영한 작품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주제의 작품을 창작해 냄으로써 근로자들을 주체사상으로 더욱더 튼튼히 무장시키며 그들을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 힘있게 조직·동원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조선중앙연감』1977년 판)


 


 


<필자 : 이구열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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