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미술대학과 미술가 양성


 


북한의 미술가 양성은 유일한 4년 과정의 평양미술대학과 1960년대 초기부터 여러 도시에 설립했거나 종래의 전문 특수학교를 개칭한 조형예술학교(고등중학교급)와 고등예술전문학교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배출된 신진들은 중앙미술기지로 말해지는 만수대창작사를 비롯하여 전국 시·도의 미술창작사 등에 보내져 당의 정책에 따른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평양미술대학 졸업생들은 여러 미술창작사에서 특별히 우대를 받으며 미술가로서의 지위를 빠르게 확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당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고등중학교 성적이 우수해야 한다. 첫 시험에 탈락하면 재수시험이 허락되지 않고, 2년 이상 공장 또는 기업소 등에서 근로 경력을 쌓거나 3년 이상 군 복무를 한 다음 재질과 혁명사상 등을 검증한 당의 추천에 따라 입학할 수가 있다. 조기 전문교육을 받은 미술학도가 특별 추천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평양미술대학은 1947년 9월에 창립됐던 평양미술전문학교가 1949년에 대학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 초대 교장과 학장은 1946년에 서울에서 월북한 유화가 김주경이 1958년까지 계속 역임하였다. 전공학부는 현재 조선화학부(조선화과·서예과), 회화학부(유화과·벽화과), 조각학부, 공예학부, 산업미술학부, 출판화학부로 분류돼 있고, 고등중학생급의 조기 전문교육 과정으로 전문부가 병설돼 있다. 그리고 2년제의 연구원(석사 과정)과 3년제의 박사원(박사 과정) 외에 주체미술연구소도 개설하고 있다. 교원(교수) 체계는 학장·부학장·학부장·강좌장·교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반드시 ‘교원 기량 발표회’를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유화가 최원수 등이 학장을 지냈다.


“사회주의 민족미술 건설에 미술대학이 수행해야 할 중요한 임무를 다하고 있다”는 평양미술대학의 기본적인 교육 방침은 역시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 앞에 복무하는 혁명적인 미술 인재 양성”에 맞추어져 있다. 김일성과 후계자 김정일도 평양미술학교의 인재 양성을 중요시하며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대작 기록화로 그린 작품이 1997년에 간행된 ‘평양미술대학 창립 50돌 기념 화첩’『주체미술교육의 빛나는 50년』에 소개돼 있다.


 


<필자 : 이구열 소장>











평양미술대학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