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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보의 횃불(정관철, 유화, 1948) |
인민예술가·공훈예술가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그의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의 교시, 그리고 당의 문예정책을 충실히 따른 내용의 창작활동이 가장 두드러진 예술인에게 국가적 최고 영예의 국기훈장 제1급인 ‘인민예술가’ 칭호와 그 다음 급수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부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먼저 시행된 ‘공훈예술가’ 칭호는 1952년 6월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처음 제정되었다. 그것은 당시 소련의 선행제도를 본받은 것으로 그 자격을 북한의 1972년 판 『문학예술사전』은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수여되는 국가 영예칭호의 하나인 ‘공훈예술가’ 칭호는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우리 인민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적 문예사상과 그 구현인 조선노동당의 문예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에서 공훈을 세움으로써 우리의 근로자들을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며 우리의 사회주의 민족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한 회화·조각·작곡·공예 등 예술부문의 예술인들에게 수여된다.”
미술가로서는 조각가 문석오(1904∼1973)가 〈김일성 장군 입상〉(1947), 〈쇠사슬은 끊어졌다〉(1955), 〈14세 시의 김일성 원수〉(1955) 등을 창작한 공로로 첫 번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공훈예술가’ 칭호 이상으로 더욱 공헌이 큼을 뜻하는 ‘인민예술가’ 칭호는 1961년 7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제정되었다.『문학예술사전』은 그 기본자격을 ‘공훈예술가’와 동일하게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오늘 그들은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육친적인 배려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더욱 철저히 무장하며 … 혁명적인 예술작품들을 창조하기 위한 사업에 온갖 지혜와 창조적 적극성을 발휘하고 있다.”
맨 먼저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은 미술가는 〈1937년 6월 4일, 보천보의 횃불〉(1948, 김일성의 항일투쟁 주제), 〈월가의 고용병〉(1952, 미군 비방 주제), 〈강철을 만드는 사람들〉(1957) 등을 제작한 유화가 정관철(1916∼1983)이었다. 현재까지 ‘인민예술가’ 칭호에 오른 미술가(사망자 포함)는 조선화가·유화가·조각가·공예가에 걸쳐 약 50내지 60명 정도, ‘공훈예술가’는 그 3배 정도로 확인된다.
<필자 : 이구열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