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경16관변상도의 연꽃(고려시대, 일본 서복사 소장)>


 


기록에 의하면 866년(신라 경문왕 6) 정월 보름에 왕이 황룡사에서 간등(看燈)한 것이 가장 오래된 연등회라고 한다. 불교에서 어둠을 밝혀주는 등은 지혜에 비유되었고, 연등공양은 꽃공양ㆍ향공양과 함께 중요한 공양법이자 복을 쌓는 공덕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연등은 석가탄신일 밤의 중요한 행사로 인도에서 시작되었고,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 순수한 종교적 행사였던 연등회는 중국에서 국가의례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중국 고유의 상원(上元)행사에 연등회가 덧붙여지면서 세시풍속이자 불교행사로서 상원연등회가 성립되었다. 바로 이 상원연등회가 우리나라로 전래되었다.

연등회는 14일[소회일(小會日)]과 15일[대회일(大會日)] 이틀간 행사가 진행되었다. 궁궐에서 연등회 행사가 진행되는 중심공간은 강안전이었다. 이때에는 대략 2,000~3,000명의 의위사(儀衛士)들이 동원되었는데. 자색ㆍ푸른색이나 보상화 꽃무늬를 수놓은 화려한 의복이나 갑옷을 갖춰 입고, 비단모를 쓰고, 칼ㆍ활 등 각종 무기류와 깃발과 일산(日傘) 등 의식용 기물들을 든 모습은 그 규모만으로도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하였고,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풍악소리는 축제분위기를 고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관리들은 3일간(14-16일) 휴가를 얻는 것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어 개경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연등회에서는 14일 오후 왕이 봉은사에 행차하여 태조의 영정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가장 중요하였다. 14일의 행사는 공식적인 국가의례의 성격을 강하게 지녀 전반적으로 매우 엄숙한 분위기였지만 밤에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이날 밤만큼은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야간의 통행금지도 이 날은 예외였다. 14일 밤 화려하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등불을 켠 사찰에 왕과 비빈들이 함께 가서 구경하기도 했고, 도로는 사람들로 혼잡하였다. 이날 개경의 밤거리를 환하게 밝힌 등불은 위로는 왕실에서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의 소망을 담은 것이었다. 한편 거리로 쏟아져 나온 많은 사람들은 광대들의 놀이를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소리 높게 울려 퍼지는 음악을 즐기면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대로변과 사찰에 이르는 길 좌우에는 상인들이 갖가지 먹거리와 잡화와 진기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호객행위를 하기도 했을 것이다. 떠들썩한 밤이 지나고 15일 아침이 밝으면 궁궐에서는 연회가 벌어졌다. 모두 3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왕과 신하들이 차와 술, 음식을 서로 나누었고, 왕은 신하들을 비롯하여 악대나 산대 등에 이르기까지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에게 꽃과 봉약(封藥), 과일, 술과 음식을 하사하였다. 이 행사는 왕과 신하간의 상하위계와 질서를 확인하고 군신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져나가기 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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