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공연예술의 형식적 특성


 


북한의 공연은 주제 내용면에서 주체사상에 기초한 작품만을 창작하는 커다란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형식면에서도 우리의 그것과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가극에서 개척한 여러 가지 공연예술 형식과 기법이 연극이나 무용, 음악, 집단체조 공연 등에도 그대로 적용 내지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장면 구성형식’, ‘흐름식 입체무대미술’, ‘방창’과 ‘절가’, ‘설화’ 등은 북한 공연예술 전반에 걸친 특징적 요소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다장면 구성 형식’이란 고전극이 가지고 있는 시간, 장소의 무대적 제한성을 극복하고 이야기 줄거리를 생활의 논리에 맞게 엮어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극 구성 형식이다. 종래의 막을 없애고, 사건 전개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부분들을 모두 장면화하여 극을 구성함으로써 몇 개의 제한된 극공간에 무리하게 많은 사건을 짜넣거나, 반대로 지나친 생략이나 비약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성황당〉식 연극’에서 보통 서장과 종장을 포함하여 10개 전후의 여러 장면으로 구성한다고 하여 ‘다장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무용 공연이나 집단체조에서도 ‘서사적 화폭’을 강조하므로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북한의 모든 공연예술은 ‘다장면 구성형식’으로 되어 있다 해도 사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에 의하면 “다장면 구성법이 좋은 것은 … 장면구성이 립체적이며 장면과 장면 사이의 련관이 빈틈없이 째여 있어 이야기가 토막이 나지 않고 생활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극조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무조건 장면을 널어놓아서는 안 되며 생활을 될수록 집중화하고 집약화하여야 하고, 그러면서도 장면과 장면 사이가 하나의 극적 흐름을 이루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장면과 장면을 연결해 주는 극구성의 요소로 감정 조직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건 조직과 감정 조직을 밀착시켜 단순한 사건들의 연결이 아닌 인물의 행동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흐름을 함께 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다장면 구성 형식의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위에 전개되는 상황을 실제의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데 있으며, 그것은 곧 이른바 ‘흐름식 무대전환’을 요구하게 된다.











혁명연극 <성황당>의 제2장 지주네 집의 무대미술 원화

북한의 공연예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가 곧 무대미술이다. ‘〈피바다〉식 가극’과 ‘〈성황당〉식 연극’은 물론이고 각종 무용, 음악 공연이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경우에도 무대미술의 근본은 ‘흐름식 입체무대미술’이라 할 수 있다.


‘흐름식’이란 ‘흐름식 무대전환’의 의미로서 말 그대로 장면 장면이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자는 데서 발상된 것이고, ‘입체무대’라고 하는 것은 ‘입체적인 무대장치’의 의미로서 깊이 있는 배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무대미술이 극 진행과 긴밀히 연결되게 하고, 그를 통해 극의 사실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목표에서 나온 것이다. 흔히 인물의 감정 변화에 조응하여 음악이나 조명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 무대 장치나 소도구까지도 극적 효과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 관점이다. 이를 위해 현대적인 기술을 최대한 동원하여 무대미술을 고안해야 하는데, 그 구체화된 성과가 바로 ‘흐름식 입체무대 미술’이다.















연극 <춘향전>의 ‘금준미주 자막’

이와 관련하여 요구되는 것은 기능성이 좋은 극장 건축과 다양한 무대 설비이다. 무대 회전은 물론이려니와 무대 전체 혹은 일부가 상하 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설비가 있어야 하고, 배경그림, 입체적 장치, 반입체적 장치, 여러 개의 중간막과 흐름막 등 무대 미술 효과를 낼 수 있는 건축적 기계적 설비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설비나 장치가 준비되면 한 장면의 진행중에 무대가 변화하기도 하며, 장면전환도 휴지가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또 북한연극에서 신속한 장면 전환을 위해 자주 사용하는 것이 흐름막을 이용한 ‘환등 배경’이다. 환등 배경이란 그림이나 사진을 필름에 담아서 영사하여 무대 배경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하는데, “앞으로 무대 우에 펼쳐질 생활환경과 꼭 같은 화폭을 환등미술로 흐름막에 비치면서 그것이 흘러가는 동안에 무대를 자연스럽게 흐름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식 장면전환의 목표는 “관중이 무대에서 화폭이 언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환시켜 관중의 정서적 감흥을 유지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방창(傍唱)과 절가(節歌)는 ‘〈피바다〉식 가극’의 음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소이다.


‘방창’이란 “무대 밖에서 불리워지면서 극의 세계를 그려내는 노래”를 말한다. 무용극이나 음악극 등에서 관현악의 기능과 유사하지만, 가사가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내용 표현의 구체성이 있다는 점에서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대사가 전혀 없는 무용극에서 방창을 사용하면 내용 전달이 보다 용이해지는 이점이 있다.


북한에서 ‘방창’이 적극적으로 이용된 것은 ‘〈피바다〉식 가극’에서부터이다. 서양의 오페라는 오케스트라를 제외하면 모두 무대 위에 등장한 상태에서 노래를 하게 되어 있는데 북한의 가극에서는 등장인물 외의 무대밖 가수에 의해 ‘방창’이 불려진다는 커다란 특성이 있다.


방창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남성방창, 여성방창, 혼성방창도 있고, 독창, 2중창, 3중창, 합창 형태의 방창도 있다. 그리고 가사가 있는 방창이 주를 이루지만 필요시 무가사방창도 활용한다.


방창의 기능은 관현악과 거의 같다. 등장인물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하고 분위기나 상황, 등장인물의 내면세계를 묘사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 장면전환 시 연결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에 백코러스의 기능도 한다. 또 부분적으로는 등장인물의 노래를 대신 불러줌으로써 등장인물이 노래보다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이처럼 가극에서 시작된 방창의 사용은 이후 연극이나 무용극, 집단체조, 영화 등에서도 적극 활용된다. 다만 가극 이외의 장르에서 방창의 사용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그것은 이들 장르의 기본형상수단이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공연예술에서 사용되는 노래는 모두가 절가로 되어 있다. 절가란 “정형시로 된 가사를 몇 개의 절로 나누어 동일한 선율에 담아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민요나 가요의 형식과 비슷하다.


절가 형식의 중요한 특성은 선율의 반복성이며 구조가 간결하다는 점이다. 또 집단적인 가창형식과 전렴과 후렴이 상호 응답하는 구조도 절가의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절가를 중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간결한 구조 속에 다양한 내용을 담을 수 있고, 또 누구나 쉽게 자기 표현의 매체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민성’, ‘통속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피바다〉식 가극’의 노래 형식을 모두 절가로 하고 있다. 또한 관현악에서도 선율을 중시하고, 절가를 확장하여 선율 중심의 관현악곡을 만드는 것도 절가를 모든 음악의 기초로 평가하는 북한의 음악관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설화(說話)는 “문학예술작품에서 인물과 생활에 대한 창작가의 립장과 태도를 밝히며 내용을 보충설명하는 형상수단”의 하나이다. 방창과 함께 무대 위에 펼쳐지는 사건진행에 대해 사건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특히 창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서사적 예술에서의 서사자의 성격에 가깝지만, 드라마적 예술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을 보인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의 ‘해설자’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보통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작품의 시작 부분이나 끝부분에서 작품세계를 미리 설명하거나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작가의 입장을 직접 진술한다는 점에서 명쾌한 주제의식 전달에는 용이하지만, 작가의식을 생경하게 노출하기 때문에 작품의 자연스러운 흐름과 효과를 방해하는 역기능도 작지 않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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