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에 이르러 북한의 문학에는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전의 문학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강한 비판성이 이 시기의 문학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직후 일정한 시점부터 문학의 동원성이 강조되면서 비판성이 점점 상실되어 갔다. 그리하여 문학이 당의 정책이나 국가의 시책을 잘 선전하는 기능을 도맡게 되면서 문학 본연의 비판성이 사라지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전후에 이르러 이러한 문학의 동원성에 대한 반성이 그 내부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다가 소련 등 외부로부터 도식주의에 대한 비판이 불어오자 북한문학 내부에서는 급격하게 비판성이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또 다른 것으로는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 등의 문제가 대두한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는 전후 시기 북한의 시문학이 그 이전에 비해 현저하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으로 이 시기 북한문학의 새로운 성격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들이다.



우선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부터 살펴보자. 이 시기에 이르러 조벽암·김우철·박석정 등에 의해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전에는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조벽암의 ‘거울 하나씩을 걸라’는 이러한 경향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당시 북한 사회에 존재하는 관료주의자들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과거에는 인민을 위한답시고 나서서 일했지만 지위가 올라가면서 인민들은 안중에 없고 오히려 그들 위에 타고 앉아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한다. 당시 북한 사회가 하나의 체제로 굳어져 가면서 관료와 인민 사이에는 이러한 틈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조벽암은 바로 이러한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서 전재경의 <나비>와 같은 작품은 당시의 관료주의를 잘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비료를 공급받고 있는 북한 농민들
전후 시기 북한 시의 비판성 강화는 비단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동안 억눌려 왔던 개인의 감정이나 욕망의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의 등장도 이 시기 북한 시의 새로운 경향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순석의 ‘마지막 오솔길’을 비롯하여 한명천의 ‘그 여자의 봄’ 등을 들 수 있다. 김순석의 ‘마지막 오솔길’은 농촌에 트랙터가 들어오고 이를 위해 길이 넓어지면서 자기가 예전에 다녔던 오솔길이 이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소회를 적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당시 북한의 들끓는 현실, 즉 농촌의 기계화라는 새로운 현실의 변화를 격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 분위기와는 현저하게 다른 것으로, 농촌의 변화라는 이 사태를 자기의 과거 기억과 결부 지어 보여주었다. 그 점에서 이 시는 당시 대부분의 농촌을 다룬 시들과 현저하게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개인의 감정을 결코 억압하지 않고 정직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와는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작품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명천의 ‘그 여자의 봄’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전후 전쟁 과부들의 내적 욕망을 잘 드러내고 있는 박효주의 장편소설 <전야에 봄이 온다> 역시 그러한 점에서 문제적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후 북한의 시문학에서 특이한 것 중의 하나는 분단현실을 새롭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 후부터 북한의 문학은 분단현실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기에 그러한 문제 자체를 다룬다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이전의 분단현실을 다룬 작품들이 주로 민주기지론에 입각하여 쓰여진 작품이고 이는 냉전체제가 가속화되면서 한층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작품들은 ‘민주적으로 발전한 북한’을 기지로 하여 아직 민주화되지 못한 남한을 구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에 민족의 통일과 같은 문제가 단순히 체제간의 문제로 축소되어 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작품들은 남한의 문제점들을 들추어내고 이를 건져주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후에 들어 이전의 이러한 민주기지론적 입장에서 벗어나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조벽암·정서촌 등이 이러한 작품을 썼는데 이것들은 분단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다. 남북이 갈라져 있는데서 비롯되는 문제를 부각시키기 때문에 남북의 체제간 차이에서 오는 우열의 문제 같은 것은 아예 스며들 틈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조벽암의 시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조벽암의 ‘서운한 종점’은 남북으로 달리던 기차가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게 된 데에 대한 감회를 통하여 분단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다른 시 ‘삼각산에 보인다’ 역시 남쪽의 북한산을 북쪽에서 바라볼 때의 심회를 통하여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벽암의 이들 시에서 ‘우월한 북한’이 ‘저열한 남한’을 구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단지 분단 그 자체는 체제의 문제를 떠나 우리 민족 전체 구성원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이 시기 다른 시인인 정서촌의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분단현실을 다룬 그의 시 중에는 부분적으로 과거의 민주기지론적 입장에 입각하여 쓴 작품도 있고 거기에서 탈피한 작품도 있는데 이 둘이 한 시인 내에서 혼재되어 있다. 전자의 것으로는 ‘밤이여’를 들 수 있고 후자로는 ‘나루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민주기지론적 입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러한 입장에서 떠난 시가 갖는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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