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전쟁은 남북 간이 아니라 남부베트남 내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응오 딘 지엠의 정치에 불만을 가졌던 세력들은 1960년 남부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of Southern Vietnam)을 결성하였다. 여기서 남부란, 남북 분단기의 남부가 아니라 남북 2000km가 넘는 베트남을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었을 때의 남부이다. 즉 사이공을 비롯, 메콩이 만들어 낸 비옥한 곡창지대를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대단히 독자적인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 왔으며 프랑스지배기의 코친차이나라는 직접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단일 지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이들은 장구한 역사 속에서 북부 홍하델타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온 베트남의 남진사(南進史)를 고려할 때 가장 변방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방적이며 낙천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을 갖고 있다. 아울러 메콩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향유해 왔다.


 







메콩 유역 한 농촌의 어린이들
(필자 사진: 2002년)
당시 베트남공화국을 지배하던 인사들은 응오 딘 지엠을 포함해서 대부분이 중부 지역 출신이거나 제네바 협정 이후 내려온 북부 지역 출신들이었고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 정책이 메콩 유역 주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응오 딘 지엠 정권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하노이와 연계해서 무장을 강화하고 조직을 구성하면서 남부베트남정권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 즈음 ‘베트콩’이란 단어가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공산주의일 뿐이라는 응오 딘 지엠의 시각을 반영한 단어이다. 베트콩이란 비엣 꽁(Viet Cong 越共)의 우리식 발음으로서, ‘월남공산당’의 약자이다.



이렇듯 전쟁은 베트콩 측과 응오 딘 지엠 측과의 내전(남부베트남에서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베트콩을 북베트남의 대리자일 뿐이며 결국 전쟁은 남과 북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간주해서 전투병을 파견(1965)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한국, 태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대가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나라들이 뒤를 이어 참전했다. 이를 빌미로 북베트남 정규군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들을 돕기 위해 중국, 소련, 북한, 쿠바,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공산국 군인들이 북베트남에 들어왔다. 전쟁은 바야흐로 세계전의 양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남부진영이 불리한 것은 명약관화했다. 베트남에서만 보자면 전쟁의 당사자가 북부의 베트남민주공화국, 남부의 베트남공화국, 그리고 메콩의 민족해방전선 이렇게 셋이었는데, 민주공화국과 민족해방전선이 손을 잡고 베트남공화국을 공격하는 형국이었다. 거기다 베트남공화국 내부에서는 줄곧 군부쿠데타가 일어나 군 장성들이 정권을 잡으니 지도자의 정통성에 흠집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응오 딘 지엠은 1963년 쿠데타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물론 미국의 방조나 권유에 힘입어 행해진 쿠데타들이지만 바로 그런 점이 공화국 지도부로부터 베트남 인민들이 급속도로 멀어지게 된 이유가 되었던 것이다.


 







사이공의 구정 기간 한 공원 모서리의 평화로운 모습
(필자 사진: 2001년)
막강한 화력으로 단기간에 주도권을 잡으리라 자신했던 미국은 전쟁이 장기화되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열렬히 개입을 찬성했던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수지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크게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특히나 1968년에 있었던 구정 기간에 북베트남군과 민족해방전선군이 북위 17도선 이하 지역 도처에서 대 공세를 가하는 사건(구정공세 Tet Offensive)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TV를 통해 베트콩에 의해서 미국대사관까지 유린당하고 베트남 도처에서 미군 시체들이 뒹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국 전체는 경악하였으며 전쟁은 호찌민을 간단히 길들이고 그 대가로 일자리나 늘어나는 그런 낙관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게 아니라는 의식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미국은 전쟁을 끝내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남부의 베트남공화국정부가 매달려 애원하는 데도 불구하고 1973년까지 모든 전투병들을 철수시켰다.



예상했던 대로, 얼마 되지 않아 북베트남군과 민족해방전선 군대는 사이공으로 밀고 들어갔으며 1975년 베트남공화국정권은 붕괴되었다. 그리고 북베트남과 민족해방전선 사이의 통합 결정이 있음으로 인해 베트남은 완전히 통일되었다.


 








포로가 된 한국군(하노이 군사박물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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