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통일 베트남을 지배하게 된 공산당은 그동안 민족주의 투쟁운동임을 강조하기 위해 입었던 외피는 시원하게 벗어 던졌다. 베트민은 더 이상 없으며 공산당이 유일한 지배 정당이 되었고 ‘베트남민주공화국’도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통일 베트남의 국호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다. 아마도 호찌민이 있었다면 민족주의적인 색채는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1969년 이미 사망했고 이후 북베트남은 친중국, 혹은 친소적 색채를 갖는 공산주의자들의 집단지도체제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통일은 완수된 것이다. 공산주의의 우월성이 입증된 마당에 공산주의적인 가치는 더 강조되었으면 되었지 감추어질 필요는 없었다.


 







호찌민의 묘소와 참배객의 행렬
(필자 사진: 1994년)


남부의 자본주의자들(대부분은 중국인)은 제거되거나 추방당했고 메콩 유역에서는 토지개혁이 실시되었으며 합작사(合作社)와 같은 공동 생산 단위가 들어섰다. 베트남공화국 정부와 일말의 연계라도 갖거나 그렇다고 낙인찍힌 자들은 재교육수용소(re-education camp)로 보내졌다. 절충이나 포용보다는 강압과 배제가 대세의 흐름이었고 이런 변화 속에 늘 있게 마련인 기회주의자나 맹동주의자들의 발호를 새 정부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혁명의 이런 엉뚱한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분노했으며, 심지어 민족해방전선에 참여했던 영향력 있는 인사들도 새 정권에 등을 돌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비효율적인 경제 운용으로 인해 메콩의 쌀 생산은 급감해 과거 세계 2, 3 위의 쌀 수출국이었던 베트남은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고 공업 발전 정책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1978년과 79년 사이, 통일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수십만의 군대를 파견했고 중국과의 국경문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중월전쟁을 치렀다. 캄보디아에서는 정치 주도권을 확보했고, 역사 속에서 반복되던 대로 중국의 침입은 물리쳤지만 베트남의 경제적 부담은 막대한 것이다. 중국으로부터의 지원도 끊기고 서방세계로부터도 고립된 채 오로지 소련과 동구권으로부터의 지원에 의존하던 베트남의 경제는 결국 파산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그 뒤를 이을 조짐을 보면서 1986년 드디어 베트남은 개방을 결심하게 된다.



도이 머이(Doi Moi 刷新)이라고 하는 이 개방정책에 의해 시장경제로 전환하였고 외국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제반 여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새롭게 바꾼다’라는 도이(change) 머이(new)는 단순한 개방 정책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기존의 모든 관념을 바꾼다는 것으로서 친구도 더 이상 친구가 아니고 적도 더 이상 적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물결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한국은 물론 미국과도 국교를 재개하고 교류를 시작하게 된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하고 아세안에도 가입하여 역내에서의 고립을 벗어났으며 국제 무대에도 적극적으로 진출 중이다.



그러나 이 도이 머이의 물결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정치권력은 줄곧 공산당이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체제를 고수하는 가운데 초래되는 당 조직 내지 관료 집단의 부패, 비효율적인 국정 운영, 민주화의 더딘 진행 등, 한 마디로 말하면 바뀐 시장경제와 바뀌지 않은 공산당지배의 정치체제 사이에서 비롯되는 제반 모순이 베트남의 발전을 방해하는 심각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과거 전쟁 기간뿐만 아니라 전쟁 후의 처리 문제를 겪으면서 형성된 지역 감정내지는 시장경제의 발전에 따른 사이공과 하노이 간 발전 격차에서 비롯되는 긴장 등을 치유하는 것도 현 정권의 과제이다. 아울러 베트남은 영역 내 중국인을 포함하여 50 개가 넘는 소수민족들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들 각 민족들과의 평화로운 공존 및 베트남 일원으로서의 소속감 부여 등을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분단기를 끝내고 베트남은 정치적으로 한 단위로 묶이게 되었지만 베트남의 진정한 ‘하나되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작업이다.


 








남베트남의 조그만 소도시에서 종종 보이는 ‘대림시티’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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