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베트남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남부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북부와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체제로의 전환은 공업 및 상업부문에서는 개인 소유로 되어 있던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농업부문에서는 지주들의 토지를 강제로 몰수하여 토지를 적게 가졌거나 가지지 않은 농민들에게 배분한 후 농민들을 집단농장에 가입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개인소유제를 없앰으로써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심화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공업부문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는 X-1 캠페인과 X-2 캠페인이라는 사회운동을 통하여 수행되었다. 1975년 8월부터 X-1 캠페인을 통하여 대지주, 대자본가, 매판자본가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가소유로 하여, 국가가 주요 산업부문을 장악하게 되었다. 외국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였다고 비난받은 매판자본가 가운데 70%가 화교들이었는데, 통일 직전 그들은 남부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었고, 쌀 도매, 도정사업, 운송부문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어 1977년 초부터 자본가들로 하여금 재산을 국가에 자진 헌납케 하는 조치가 취해졌고, 1978년 3월에는 X-2 캠페인을 통하여 1,500개의 사영기업을 국유화하여 650개의 국유기업으로 만들었다.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청사(필자 사진, 2003)



농촌을 사회주의화하는 작업은 먼저, 대지주에 대한 토지를 몰수하여 토지를 가지지 않았거나 적게 가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토지조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남부에서 토지조정은 1978∼79년 및 1983∼84년 두 차례에 걸쳐 수행되었다. 이로써 지주와 부농의 비율이 감소하였다. 이와 함께 1978년부터 농업집체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통일 이전 농민들은 자신의 소유인 토지에서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경작하고 생산물을 내다 팔았었다. 농업집체화는 농민들에게 자기가 가진 토지, 농기계, 가축 등 자산을 ‘합작사’라는 집단농장에 헌납하고 이에 가입하여, 합작사 관리위원회의 계획과 지시에 따라 농민들이 생산하고 그 수확물을 분배받는 제도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농업집체화는 두 단계를 거쳐 수행되었는데, 첫 단계는 농민들이 자기 자산을 ‘생산집단’이라는 집단농장에 헌납하지만 소유권을 가진 상태에 있으면서 ‘생산집단’의 계획과 지시에 따라 농경작업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단계는 농민들 개인소유였던 자산의 재산권을 포기하고 ‘합작사’에 헌납하여 공동소유로 바꾸는 것이었다. 통일 이후 공산당과 정부는 ‘합작사’에 가입하는 것이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하였지만, 간접적 압력을 통하여 강제적으로 이에 가입하도록 하였다. 농민들은 ‘합작사’ 가입을 거부한다든지, ‘합작사’에 들어가기 전에 농기계와 농업용구를 팔아치우거나, 합작사에 가입한 이후에도 제 때에 수확을 거부하거나, 토지를 경작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가축을 도살하고, 과일나무를 절단하는 등의 저항을 하였다.



특히 남부의 곡창지대인 메콩델타 지역에서는 경직된 사회주의체제로부터 벗어나 전면적 개혁정책을 시작한 1986년에 이르러서도 ‘합작사’에 가입한 비율이 6%에 지나지 않았고, 대부분 ‘합작사’보다 초보적 집단농장인 ‘생산집단’에 가입했을 따름이다. 이 가운데서도 형식적으로만 가입하고 실질적으로는 사영농업을 유지하는 농가들이 많았으므로 남부 농촌에서의 사회주의화는 실패하고 말았다고 하겠다.

베트남 정부는 경제체제의 사회주의화와 더불어 기존의 경제적 지배계급을 압박하려는 조치로 두 차례에 걸친 화폐개혁을 단행하였다. 1975년 9월 남부의 500 피아스터를 남부에만 유통되는 새로운 화폐 1동(dong)으로 교환하는 조치를 취하였는바, 교환한도는 가구당 400동이었으며, 그 이상은 은행에 강제로 적립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일부 주민은 화폐개혁 시 교환 한도 초과분 가운데 80-90%를 지방간부에게 헌납하는 조건으로 한도 이상으로 교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전국적인 단일 통화인 동(dong)화로의 화폐개혁은 1978년 5월에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공업 및 상업부문에서는 국유화 조치로 인하여 남부의 기존 경제지배계급이 몰락하였으나, 농촌은 기존의 지배구조에 부분적 변화만 있었다. 사유재산 몰수와 화폐개혁조치는 부분적인 성공만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부자들이 재산을 화폐가 아닌 귀금속 형태로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유화와 화폐개혁을 통하여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남부의 기존 경제구조가 해체되었다.



이한우(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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