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사회의 변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식량난을 거치면서 북한 주민의 생활은 그 동안 사회가 추구해온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사실상 자유로운 인구이동, 장마당이라는 비공식적 시장을 통한 생필품 조달, 집단적 이익과는 거리가 먼 장사 등은 최근 북한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거의 보편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헐벗고 굶주린 불쌍한 남조선 동포’의 삶에 대한 동경과 더불어 남한의 가요 및 드라마 수용, ‘적대방송’으로 규정된 남한의 라디오 청취가 북한 주민의 비공식적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그 동안 봉건사회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라고 지적해온 미신 행위와 매매춘도 과거와 달리 북한 주민들 사이에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한 주민의 삶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범죄 및 일탈과 관련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양화되고 급증하고 있는 범죄와 일탈에 대한 이해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범죄와 일탈 현상은 주민생활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일 뿐 아니라, 사회변동을 반영하면서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범죄 및 일탈행동의 동기와 구조적 조건, 그리고 당국의 대응 등 미시적-거시적 차원에서 북한 사회의 건강성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 연구에서는 북한 이주민(‘새터민’)을 면접하여 범죄 및 일탈의 유형과 빈도 그리고 그 변화를 제시하고, 다양한 범죄 및 일탈 이론을 검토하여 북한 주민에게 어느 정도 적용할 수 있는지 탐색하였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북한 주민의 범죄와 일탈행동은 북한의 발달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바, 1990년대 중반 변혁기를 거치면서 범죄 및 일탈행동이 다양화되고 빈도가 증가하였다. 사회가 안정되었을 당시는 범죄 및 일탈의 유형이 단순하고 빈도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유형도 다양화되고 빈도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대물범죄가 일반화되고, 북한에서는 금지되는 개인 경작과 상행위가 일상화되며, 매춘‧미신행위‧‘퇴폐적’ 문화 등 희생자 없는 범죄가 확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물자 유용과 뇌물수수 등 권력형 비리도 기정사실화 된다. 결국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경험만으로 북한 주민의 범죄 및 일탈행위를 이해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둘째, 최근 변혁기를 거치면서 범죄 및 일탈로부터 자유로운 주민이 없을 만큼, 범죄의 일반화가 진행되었다. 일반 주민의 경우, 국가재산을 대상으로 절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며, 집에서 만든 물건이든 다른 곳에서 사온 물건이든 장마당에서의 거래행위는 일상사가 되었다. “젊은 사람치고 남한의 드라마 1~2편 안본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퇴폐적 문화’에 익숙해 있으며, ‘적대방송청취’도 증가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진학‧직장배치‧주택배정은 물론 여행증명서 발급 등 주민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상적으로 뇌물을 받으며, 의사의 진단서를 받는데도 뇌물이 필요한 실정이다. 여성의 매춘 행위도 증가하고 있으며, 열차 승객을 대상으로 역 주변에서 영업하는 ‘대기숙박업’은 사실상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북한 주민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범죄의 유형이 다를 뿐 범죄 자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 중화기법(neutralization technique)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행위는 원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행한다는 식으로 책임을 부정한다. 국가 재산은 인민의 재산인데 배급을 주지 않으니까 알아서 가져오는 것이라는 식이다. ‘비난자 비난하기’도 북한 주민들이 애용하는 중화기법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뇌물이나 받아 챙기면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이 나쁘지 먹고살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왜 나쁘냐는 식이다. 결국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면서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회피하려고 노력한다.



넷째,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는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유형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북한사회의 변동이 급격히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범죄와 순응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마당에서의 장사는 제도적으로 불법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으며 당국에 의해 묵인된다. 군(郡) 단위를 벗어나는 무단 여행 또한 불법이며 대부분의 여행자는 통행증을 발급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하지만, 당국에서는 이를 묵인하거나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결국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 순응과 일탈간의 경계가 불명확하며 이는 북한 사회가 총체적 아노미 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주민의 범죄와 일탈 현상에 대한 원인 혹은 구조적 조건은 다차원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먼저 생물학적 설명은 적절한 설명이 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체적 개인의 경우 유전적 특질이나 신경착란 등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최근의 범죄율 급증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차별교제이론과 낙인 이론의 경우 북한 주민의 범죄와 일탈을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죄 유형과 기법을 상호교류과정에서 학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교적 자유스러운 인구 이동과 원활해진 정보의 유통으로 인해 보다 쉽게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낙인이론의 경우 범죄‧일탈자로 규정된 일부 북한 주민은 상습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차별교제이론이나 낙인 이론은 북한 주민의 범죄 동기 그 자체를 설명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범죄를 전수해줄 수 있는 최초의 범죄는 누구인가? 그러한 범죄 수법은 왜 19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발달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범죄의 유형과 빈도는 다르겠지만, 북한 주민이라면 거의 모두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의 어떤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최근 범죄율의 증가는 아노미 이론과 사회통제 이론 등 보다 구조적인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노미 이론에서 주장하듯이, 북한 주민도 생존이든 부의 축적이든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제도적으로 규정된 방법으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배급이 전면 중단되고 생필품을 비싼 가격으로 장마당에서 구입해야 하는 현실에서 북한 주민이 제도적인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회통제의 실효(失效) 또한 북한의 범죄율 증가에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수많은 주민들의 범죄와 일탈로 인해 통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관료들 역시 일반 주민과 유사한 범죄‧일탈행위를 할 뿐 아니라 부패함으로써 통제를 하려고 해도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사실 특정한 유형의 범죄와 일탈은 통제를 포기하고 묵인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배급을 못주는 상황에서 물건을 집에서 만들고 장마당에서 상거래를 하는 행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종합적으로 볼 때, 북한 주민은 범죄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주민은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80년대 중반 증가하기 시작한 범죄는 1990년대 중반 최악의 식량난을 맞으면서 전파되고 공유되면서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통제까지 효과를 보지 못함에 따라 북한 주민의 범죄와 일탈은 하나의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북한 이주민과의 면접을 통하여 북한 주민의 범죄 및 일탈의 유형과 빈도, 그리고 동기와 구조적 조건에 대하여 조사하였는데, 여기에 제시된 일반적 진술들은 앞으로 더 구체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한정된 응답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접방법의 한계가 그러하듯이, 시대별 범죄율의 변화나 유형별 범죄의 빈도를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못했다. 앞으로 양적 조사를 통해 이런 한계를 극복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연구는 범죄의 동기‧원인‧조건과 관련해서도 탐색적 수준에 머문 한계를 갖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는 어떤 이론이 어떤 범죄를 설명하는데 얼마나 유용한지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연구 또한 범죄의 유형별 빈도와 시기별 변화에 대한 양적 자료를 확보했을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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