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바로 탈북현상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전례 없는 식량난 속에서도 북한 주민들은 나름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했으며, 한번 더 허리띠 졸라매며 ‘고난의 행군을 웃으며 가자’라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제일 먼저 행동으로 옮긴 것은 식량 사정이 좋은 지역으로 이동해 식량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 식량 배급의 중단은 1993년 함경남도와 량강도 등 북부지역에서 시작됐는데, 1994년 가을부터는 함경남도·평안남도·평안북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용기를 내 불법 월경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살기 위한 방편으로 월경을 시도했기 때문에 처음 중국으로 넘어간 사람들 중에 눌러앉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나 식량을 구하면 바로 북한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탈북현상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주원인은 1995년의 보기 드문 ‘큰물’(홍수) 피해였다. 1995년 여름, 곡창지대인 황해북도·황해남도 일부에서 대량 강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취약한 잉여식량의 원천을 박탈하는 심각한 것이었다. (텃밭의 면적은 한 세대 당 200∼1,000평에 달할 정도로 북한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야말로 인민의 생계를 부지해주는 ‘내부 예비 식량’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큰물’(홍수) 피해로 인해 대부분 유실되었던 것이다)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대상이 홍수피해로 사라져버린 1995년 가을부터는 친척 방문 목적의 중국 월경 양상이 급증함과 동시에 눌러앉는 ‘정주형’이 부쩍 늘기 시작한다. 중국 국경지역의 조선족 농민들도 북한 주민들이 난민 형태로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 1995년 말경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이후 중국으로의 난민 유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북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 악화되는 식량난에 대한 특별한 생계 대책 없이 주민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방치해 둔 결과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당간부와 군인들에 대한 배급 외에는 식량난에 대한 당국의 정책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종전의 배급체계를 중단시켜버린 결과,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굶어죽거나 탈출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식량이 귀해져 식량 가격이 폭등하자, 일부 특권층은 배급받은 식량과 권력으로 빼돌린 양곡을 암시장으로 유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고가의 암시장 가격이 전국적으로 정착되면서 돈 없는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버렸다. 이후부터 북한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가속화되고,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계층은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특히 텃밭이 없는 도시의 주민이나 중국제품의 입수가 어려운 동해안 공업도시의 노동자는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서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는 탈북 러시라고 할 정도로 탈북 주민들이 급증하는데, 조선족 농민들은 북한 주민 탈출 증가율이 1997년은 1996년의 약 10배, 1998년은 1997년의 약 10배 정도라고 증언하고 있다. 식량난 악화를 완화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원조도 시작됐지만, 일반 주민이 직접 그 혜택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분배의 투명성이 뒷받침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양곡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중국으로부터 물자를 입수하기 쉬운 신의주·혜산·온성·회령·무산 등 국경에 연해 있는 지역 뿐으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아무런 대책없는 아사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한편, 황해남·북도 등은 식량 사정이 그나마 나은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당기관과 군부대들의 식량 원천으로 지정되어 있어 잉여식량의 산출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8년부터는 함경북도 뿐 아니라 북한 전 지역으로부터의 탈북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한동안 기후로 인한 피해도 줄고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탈북 현상이 잠시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탈북 현상의 원인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거나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탈북 현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의식해 중국과 북한 당국이 탈북자 색출작업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북 러시를 차단하지 못하고 있으며,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의 물가 폭등은 새로운 탈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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