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식량난은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를 초래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는데, 자본주의 진영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구걸 외교’라고 부정적으로 태도를 보이던 북한이 드디어 서방 자본주의 진영의 도움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된 것이다.



식량을 얻기 위한 탈북자들이 급증하고 사회 기강이 해이해지는 등 체제 위기를 경험한 북한 당국은 국제기구는 물론 독일·스위스·호주 등 서방국가에 지원을 요청하기 시작했는데, 스위스는 그 첫 대상국가였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식량 지원 요청에 스위스 정부는 1997년 45톤의 냉동 쇠고기를 처음 전달하면서 지금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수백 톤의 냉동 쇠고기를 지원해오고 있다.



북한의 이례적인 식량지원 요청에 한국 정부를 비롯 미국·독일·일본·호주·러시아·인도 등이 관심을 보이면서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북한체제로부터 ‘철천지원수’, ‘미제’로 불리던 미국이 가장 앞장섰다.



미국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한다는 원칙 아래 상당량의 식량을 제공했는데, 북한은 “미국 정부가 세계식량계획의 호소에 호응, 우리나라에 식량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이 위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도력에 굴복하여 갖다 바치는 식량이라고 선전하는 등 식량 위기 속에서도 체제 정당화 논리를 자체적으로 개발, 체제 단결에 주력했다.



또한 1997년부터 지속적으로 북한에 식량 및 경제지원을 해 온 호주 정부는 북한의 영농개선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최근에는 북한 토양연구를 위한 양해각서까지 교환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 개발 중이라는 입장 표명 이후 호주와의 관계는 거의 끊기다시피 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한편, 상당량의 식량지원에 앞장 서오던 일본 정부도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납치범 시인 이후 여론의 악화로 인해 북한 지원은 중단된 상태에 있는데, 현재 얼어붙은 북일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북한을 돕는 나라는 미국과 한국 외에는 국제기구 밖에 없다. 국제기구의 지원도 북한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그 지원 분량이 대폭 줄어든 형편이다. 9.11 테러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평가하는 미국은 북한 당국을 적대시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과 정권은 분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 꾸준히 식량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민족화해협력의 정신에 입각하여 일정량의 식량과 비료를 거의 정례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로부터 지원받는 식량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는가에 있다. 다시 말해 ‘분배의 투명성’ 문제인데, 최근 분배 현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도입하고 있지만 북한 체제 특성상 분배 투명성을 끝까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편, 북한은 대대적인 토지정리작업을 통해 농경지를 확장, 곡물생산을 늘리려는 자구 노력을 해 왔는데, 리 또는 군 단위로 추진할 경우 단기간에 실행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도 단위로 묶어서 대규모로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민군이 앞장서고 전국의 민간 돌격대와 각종 장비들이 총동원되는 이른바 ‘선군정치’ 방식으로 토지정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새로운 가격체계로 식량가격을 통제하는 경제관리방식을 2002년 7월부터 도입, 식량난을 타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쌀값이 국가가 정한 가격에 머물지 않고 계속 오르고 있어 또 다른 식량난이 전개되고 있다. “나라의 쌀 수매가격을 인상함으로써 농민들의 생산의욕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며 실시한 새로운 조치 이후, 1kg에 8전이던 쌀값은 “원래의 가치대로 계산돼” 44원으로 무려 550배나 인상되었는데, 문제는 이 가격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 즉,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현재 쌀 1kg에 190원에서 200원을 호가하고 있어 경제력 없는 주민들의 식량 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결국 현재 북한은 옛 시스템도 작동하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만 가중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먹고살기 위한 탈북 또한 계속되고 있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