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미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등 제 3국에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탈북자 수는 민간단체 추산으로 약 10만 명에 달하고 있다. 그중 5∼10%인 5천에서 1만 명은 20세 미만의 청소년과 아동들이라고 한다. 가족과 함께 온 경우도 있지만 북한에서 함께 떠돌던 친구나 형제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현지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의 사례를 통해 이들이 안고 있는 기근으로 인한 상처와 중국에서의 절박한 삶을 이해해 보자.
연길에서 만난 16세 소년은 키가 132cm이었다. 결핵으로 기침을 하면서 개천가 다리 밑에서 잠을 잤다. 여름이라 그나마 살 만하다고 하면서 온 몸이 모기에 물려 매우 가려워했다. 어린 아이의 얼굴로 나이보다 어른스런 표정을 지으며 점잖게 이야기했다. 두만강 건너편에서 굶고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며칠 뒤 이틀을 굶은 빈속에 그동안 모은 돈을 삼키고 두만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8살에 변성기가 오지 않아 걱정하는 청년과 성장이 멈춰서 12∼3세의 얼굴로 아직도 어린 소녀의 몸짓을 하는 17세 처녀도 만났다. 장기간의 만성적 영양부족으로 자연연령과 생리연령간의 괴리가 생긴 경우라고 하겠다. 지금이라도 안정된 상황에서 집중적인 영양공급을 하면 멈췄던 성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이 획기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이러한 성장 발육상의 문제에 대해 이 아이들 자신도 민감하게 느끼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내게 선물로 “키 크는 약”을 사달라고 이야기하자 그 옆의 아이는 만난 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그렇게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점잖게 타이르기도 했다. 피난 시절에 남한 사회에서도 많이 있었던 거리의 어린이들처럼 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이미 당당한 독립적인 생활인으로서 강인한 정신과 성숙한 면모를 보였다. 북에 남기고 온 가족들을 위해 돈을 모으고, 아무리 먼 길이라도 걸어서 찾아 갈 자신이 있었으며, 몰래 숨어서 기차를 타고 심양, 대련, 북경까지 모험을 하고 오기도 했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도, 북쪽 군인에게 잡혀도 며칠을 굶으며 다시 도망쳐 나올 수 있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다.
어린이들은 꿈이 있었다. 죽지 않고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춤을 잘 추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테레비에서 본 남한 아이들과 비교해 보고 위축이 되기도 하지만 자기도 조금만 연습하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금방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첩보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아이, 시집을 보고 싶다는 소녀, 서울에서 나온 중국어 교과서가 좋다고 열심히 암송하는 아이, 공부가 하고 싶다며 미래를 걱정하는 아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었다.
북한의 주민들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좀 더 잘 살아 보겠다는 행위는 아니다. 이것은 자살만큼이나 극단적인 저항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북한은 주민들을 거의 폐쇄적인 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가깝도록 사회화시켰다. 그 공동체를 이탈하는 것은 비겁한 배반이고, 반역적인 범죄로까지 여겨진다. 발각되면, 그 처벌은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항상 붙잡혀서 북쪽으로 송환되는 것에 대해서 극단적인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이는 송환된 후의 자기 자신의 운명만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염려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류의 공포심은 극단적인 죄책감과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험한 고비를 넘겨서 일단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잘 먹으면 곧 심한 죄책감과 수치심까지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북한에 남기고 온 가족들 때문이다. 많은 탈북 청소년들은 국경을 넘은 자신의 행동이 비겁한 배반이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지우지 못한다. 몰래 돌아가서 북한에서의 삶을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한다. 중국에 온 모든 탈북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남한으로 오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언제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불법 입국자로 잡혀서 북한으로 송환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공포심은 중국에서의 이들의 삶을 극도로 위축시켜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유린을 당하여도 이에 대해 무기력한 존재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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