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기독교 단체와 교회들은 세계 각국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집중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곳이 중국이고 그 중에서도 조선족들이 밀집해있는 지역들이다. 북한의 기근 때문에 많은 난민들이 식량을 찾아 숨어 들어온 곳도 바로 이 지역이기 때문에 남한의 선교사들은 이들의 구호활동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 식량난민들에 대한 구호와 선교 방식은 같은 기독교 안에서도 교파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궁극적 목표를 탈북자 선교를 통한 북한 선교에 두고 있고 특히 많은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고 있는 일부 보수교단의 선교는 전투적이라고 할 만큼 적극적이고 그 목적이 뚜렷하다. “중국안의 여러 곳에 있는 비밀신학교와 비밀고아원에서 선교특공대를 훈련시켜서 북한에 들어가 1만 지하교회를 건설하도록 하겠다”거나 “꽃제비들 중에서 신앙심이 투철해진 아이들에게 십자가와 성경책을 감추고 북한에 들어가도록 해서 북한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할 정도이다.



이러한 선교전략은 탈북 난민들을 도구화하고 위험에 빠뜨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현지의 다른 선교사들의 목소리도 있는데 교회에서 지원하는 비밀고아원이나 은신처의 하루 일과는 대부분 성경공부와 찬송과 기도로 꽉 짜여져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남한의 교과서와 동화책들을 마련한 곳들도 있지만 다른 잘못된 생각이 들어간다고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관련된 책만을 읽도록 하는 곳들도 여러 곳이다. 이곳의 생활을 못 견디는 아이들은 떠나가고 오래 남아 신앙심이 깊어진 아이들이 서울로 가는 “지하철도”를 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지하철도(Underground Railway)는 남북전쟁 시기에 미국 남부의 흑인노예들을 북쪽의 자유주로 몰래 밀수했던 조직적 운동을 뜻한다. 중국에서 공포에 떨고있는 탈북 난민들을 남한으로 데려오기 위한 이 일에는 2001년에 이미 60개 이상의 단체와 개인활동가와 수천의 후원자가 간여하고 있었다. 기독교 선교단체와 불교활동가 집단, 합법 비합법 선교사들, 밀수꾼, 브로커, 매수된 경찰과 국경경비원, 미얀마의 마약밀매꾼과 반군, 여러 나라의 정치인과 외교관들까지 개입된 일이 되었다.



대부분의 탈북 청소년들이 최초로 의미있게 접촉하는 남한문화는 기독교문화이다. 그것도 대부분 가장 열성적인 복음주의적 기독교 선교사들이나 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이다. 집중적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찬송가와 통성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믿음체계의 치환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의식·무의식인 선교전략과 효과적으로 맞물려있다. 즉, 북한에서 일상적으로 행했던 주체사상학습과 수령의 일화 익히기와 열심히 혁명가를 불렀던 것과 비슷한 일로 여기는 것이다. 똑같은 열심과 집중된 노력을 기울이면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보상된다고 믿는다. “신자”가 되는 것은 “당원”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한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길이라 여긴다. “착한 신자”는 “열심당원”처럼 선택받고 구원받는다. 실제로 맨몸의 탈북 청소년들이 “구원의 땅” 남한으로 올 수 있는 길은 거의 그 길밖에 없다.



모두가 곧이곧대로 그런 믿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들은 한 체제의 화려한 이념과 비참한 현실간의 엄청난 차이를 일찍 경험한 아이들이다. 신앙을 선교집단이 강요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구호받는 동안만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한 탈북 청소년이 남한에 오기 위하여 성경구절 천 개를 외고 남한에 오자마자 이를 비웃었던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가장 절박한 상황에 놓인 난민들에 대한 구호가 선교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선교의 효과는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 이주민들의 95%이상이 기독교 신자라고 하는 사실로도 나타난다. 오늘날 북한 주민들 거의 대부분이 종교가 없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현상이다. 그것은 다른 한편 그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은 거의 모두 한국의 기독교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현실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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