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주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교육 기관인 하나원 안에 탈북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한 “하나둘학교”가 설립된 것은 지난 2001년 2월이었다. 올해까지 600여명의 학생들이 하나둘학교에서 남한의 첫 학교생활을 경험하였다.



하나둘학교 학생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가 압축된 역사적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북한에서 기나긴 “고난의 행군” 끝에 중국에 도착해서 그 곳에서도 불안과 공포 속에서 숨어 지내는 생활을 하였고, 다시 몽골이나 베트남, 미얀마, 태국까지의 먼 길을 돌아서 이 곳에 도착하였다. 수천 킬로미터의 사막과 정글과 지뢰밭과 철조망을 가로질러 연결된 이른바 “서울행 지하철도”라고 불리는 인간고리를 따라오며 이미 엄청난 인생 경험을 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다.



처음에는 3개월 과정(2001년 9월부터는 2개월 과정)으로 이들이 이후에 남한의 각급 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과도기 적응교육을 시작하였다. 모든 교과서를 펼쳐 놓고 특히 이들이 생소하게 느끼는 영어와 컴퓨터 수업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곧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오랜 기근으로 사실상 붕괴되다시피 한 북한 교육 체제 속에서 이전과는 달리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과학, 지리 교육과 역사관의 차이로 너무 달라진 국사, 거의 생략되다시피 한 세계사 등의 기초 지식을 우선 보충하는 교육이 필요했다.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사회과목 수업조차도 그냥 읽고 이해하기에는 내용과 용어가 너무 달라 단어 하나 하나에 대한 설명 없이는 잘 진행이 되지 않아 결국은 국어 수업이 되었다. 수학은 비교적 공통점이 많았지만 그것 역시 용어와 교수방법, 연습량의 차이로 그리 쉽게 극복되는 과목은 아니었다. 유일한 희망은 학생들의 강한 의욕과 적응능력이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주입식 수업이나 두꺼운 교과서를 만나면 쉽게 꺾여 버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탈북 후 중국 등 여러 나라를 거치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학습공백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습관을 다시 익히고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학습동기를 유발하도록 하는 일이 우선 시급한 과제였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아와 탈북, 가족의 이별, 신변의 위협 등의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다양한 심리적 상처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생활과 믿고 사랑하는 인간관계의 지원이 있으면 이러한 상처들의 많은 부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적응해야 할 남한 사회는 같은 언어권임에도 문화충격을 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다르고 이들의 억양이나 학습능력, 행동양식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차별이나 소외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왕따”라는 단어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민감한 청소년기에 이러한 상황을 회피하거나 고립된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대면하여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단순히 남한 학교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하나둘학교의 교육 목표가 되었다.



하나둘학교의 진화는 변화가 아니라 각 단계의 모색들이 축적적으로 프로그램화되는 양상을 띠었다. 예를 들어 “생활수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자 개념을 가르치며 이자율을 계산하거나, 남한의 도시 이름을 외우고 여러 교통수단으로 그 곳에 가는 시간을 계산하기도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 경제, 보험과 복권의 확률 등도 가르쳤다. 다양한 외래어를 가르치면서 남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생활, 스포츠 내용까지 소개할 수 있었고, “생활영어” 교육과도 결합시킬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나면 3박 4일간 현지조사(field-work)를 통해 남한 사회를 직접 보고 경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남한 문화 낯설게 보기” 현장연구를 수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북 부안의 새만금 간척지와 변산 반도 관광지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개발과 환경 문제를 밤늦도록 토론하기도 하고, 경찰서와 병원, 은행, 우체국, 시장, 학교를 찾아 직접 인터뷰도 해보고 남북한 사회와 문화를 비교해서 토론 할 기회를 가졌다. 변산 공동체에 들어가 남한 사회에서 대안적인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토론도 하였다. 안산의 외국인노동자 상담소도 찾아보았고, 요즘은 동대문 시장과 서울의 다양한 문화 현상을 탐방하고 있다. 화려한 백화점만이 아니라 그 곳에 진열된 옷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 현장도 함께 보는 것이다.



매주 하루는 연극을 통해 심성수련과 자기표현을 공부하는 날이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해” 소속의 여러분들이 와서 학생들 스스로 자기의 지나 온 과거를 정리하고, 오늘을 느끼며, 내일을 그려보는 작업을 해 보도록 이끌어 준다. 졸업 직전에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본다. 주제도 토론을 통해 학생들이 정하고, 대본도 각자 자기 목소리로 만든다. 연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미완성이다. 졸업식 무대 위에서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해진 틀 안에서 “옳은” 말을 “바른” 태도로 하도록 “암송”하고 “연습”하며 자란 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남한의 첫 학교에서 이렇게 열린 연극을 공연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극적인 일이다. 이 연극은 각자가 (그러나 함께) 주어진 대본 없이 만들어 나가야할 앞으로의 삶을 상징하는 하나둘학교 통과의례 교육의 대단원이다.



하나둘학교는 그 이름 그대로 북한 출신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어서 빨리 남한 식으로 “하나”가 되라고 채찍질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고단한 삶을 살면서 먼 길을 돌아 온 이들이 먼저 “푹 쉬면서” 몸과 마음을 풀고, 그 동안의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다시 태어난 아이들처럼 호기심에 찬 눈으로 직접 남한 사회를 탐색해 보도록 권한다.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자신의 모순이 보이지 않는 남한 사람들보다 더 직관적인 관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험난한 다른 삶을 이겨내 온 어린 학생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무한한 적응 능력을 믿고 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둘! 하나둘! 따로 또 함께” 사는 연습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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