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탈북 청소년들이 생소한 대학입시의 어려운 과정을 남한 학생들과 함께 겪고 있다. 이제 또 하나의 경계선을 넘으려 하는 것이다. 이들 중 몇몇은 “귀순용사”시대의 관행과 “재외국민특별전형”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남한의 명문대학에 입학할 것이다.
대부분 남한 사람들은 대학에 입학하면 일단 성공한 것으로 안심한다. 그러나 이들 탈북 학생들의 대학입학은 오히려 새로운 도전과 시련의 시작이다. 특히 소위 명문대에 입학할수록 남한 사회의 가장 경쟁적인 학생들 틈에서 엘리트의 환상과 엄청난 학력격차의 현실사이에서 좌절하고 학교를 떠나기 쉽다.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학력격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남북 간의 학제가 다르다는 데 있다. 남한의 학제는 (1)-6-3-3제 이지만, 북한은 1-4-6제를 기본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등교육 기간이 남한은 6년인데 비해 북한은 4년으로 2년이나 짧아서 북한의 고등중학교를 졸업해도 총수학기간은 남한의 고등학교 1년을 마친 정도이다. 더욱이 그 교육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오랜 기근으로 인해 이 시기에 자란 아이들의 학력은 지역에 따라 대단히 편차가 크고, 교육내용도 부실하며, 학교를 못 다닌 아이들도 많다.
북한을 탈출한 청소년들은 흔히 중국 등 여러 나라를 거치는 과정에서 대부분 2∼5년간의 학습공백이 생긴다. 남한의 초 중 고등학교에 편입을 하게 되더라도 학습부진에 더해 동급생들보다 많은 나이, 독특한 억양과 문화적 소원함 등의 이유로 소외와 차별을 겪기 쉽고 결국 학교를 자퇴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검정고시를 통해 학년차이를 좁혀 보아도 학력의 차이와 문화차이를 다시 극복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이 상처를 입고, 좌절과 실패, 탈락을 경험한다. 어린 나이에 남한 사회와의 첫 만남부터 어긋나는 것이다.
2003년 11월 현재 500여명에 달하는 학령기 탈북 아동·청소년들이 남한의 교육제도 속에서 겪고 있는 혼란과 어려움에 비해 이들에 대한 현행 지원체제는 대단히 초라하다. 몇몇 민간단체의 긴급구호활동 차원의 자발적 지원이 거의 전부인 형편이다.
일단, 정부차원의 제도적 틀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은 이들을 위한 학력 및 적응능력 보강, 진로 개발, 보호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특성화 학교를 설립하여야 한다. 이 학교는 법, 제도, 예산 면에서 공적인 틀을 갖추고 1∼2년 정도의 종합적인 준비교육을 통해 학력과 학령을 맞추어 남한학교에 편입시킬 수 있는 유연한 학력 인정 권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바로 취업할 수 있는 기능을 익히고 자격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들이 편입한 남한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에게는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사는 연습으로서의 통일교육이 필요하다. 이때 비로소 남북 간 교육제도를 통합시키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실험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인적 토대를 다지는 일이자 남북문화통합을 위한 기본적 교육 인프라 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탈북 아동들과 청소년들은 성인과는 달리 남한의 교육제도에 편입하여 교육을 받아야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새로운 남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각자의 연령에 맞는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초기부터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키우는 일은 단순한 구호활동이 아니다. 중요한 사회적 투자인 것이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하여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