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익숙한 땅을 등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탈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쉽게 신변의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여성의 몸으로 탈북하는 것은 보통의 ‘용기’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여성들은 목숨을 건 엄청난 탈북을 감행하는 것일까? 더욱이 북한을 탈출하는 여성이 남성의 3배에 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아보자.



첫째, 북한 여성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탈북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식량을 구하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의 경제난 이후 가족 부양을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책임지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국가로부터 식량이나 임금을 받을 수 없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보름에서 한 달씩 걸려 농촌에 가서 식량을 구해 오거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 역할의 담당자는 다름 아닌 여성들, 즉 어머니나 딸들이었다.



특히 장사는 북한 주민 10명중 9명이 경험이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생계 수단이 되었다. 여성들이 하는 장사는 주로 집에서 토끼, 닭과 같은 가축이나 ‘남새’(채소)를 길러 시장에 파는 것이다. 토끼 한 마리의 가격이 10년 근무한 소학교(과거의 인민학교,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 교사의 한달 임금과 맞먹는 북한 현실에서 장사가 성행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만약 장사를 할 수 없으면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본가로, 어머니는 친정으로, 자녀는 길가에 버려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여성들은 돈을 모아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탈북하는 것이다. 이 때, 여성들은 잠시 중국 등지에서 돈을 모아 다시 북한으로 간다는 생각에서 일시적으로 북한을 나온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 수비 강화, 북한의 송환자 처벌 등으로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고 가족과 연락도 두절된 상태에서 탈북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의 생계를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 책임지는 이유는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먼저 북한에서 직업의 의무가 남녀에게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남성이라면 무조건 직장에 나가야 한다. 만약 특별한 이유 없이 6개월 이상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교화소(우리의 교도소)에 가야 한다. 미혼 여성들도 남성과 같이 직장생활이 필수적이다. 그렇지만 여성이 결혼하면 직장생활은 선택사항이 된다. 집에서 ‘가두여성’(가정주부)으로 있거나 직업을 갖거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결혼한 여성들은 직장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 남성들은 가부장제적 권위의식과 ‘체면’을 내세워 장사를 기피한다. 반면 여성들은 자식을 비롯한 가족을 굶길 수 없다는 책임의식 때문에 장사에 뛰어든다. 여성들이 가족에 대한 부양의식을 갖는 것은 식사를 준비하는 주체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가장 먼저 깨닫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에서 6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여성들의 가정에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경제난 이후 북한 산업시설의 마비로 유휴 여성노동인력이 증가하여 여성의 탈북기회가 상대적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18세 이상의 남성들에게 군복무는 의무사항이기에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전체 노동력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을 기준으로 47.5%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이 경제시스템이 붕괴되자 가장 먼저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셋째, 중국에서 시장경제 발전에 따라 농촌 총각의 결혼문제가 심각해지고 도시 유흥가의 여성 서비스직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인신매매 조직이 활동하여 북한 여성들을 거래하는 것이다. 재중 탈북여성의 상당수가 인신매매 조직을 통해 탈북한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북한의 미혼여성들은 시집가서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거나 아니면 돈을 벌어 가족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 자신을 팔거나 혼자 탈북하기도 한다.



넷째, 셋째 이유와 관련하여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중국에서 돈을 벌기가 쉽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에는 여성들이 대부분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여성들이 단독으로 탈출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의 90%이상이 중국에 체류하는데, 그들은 중국에서 친척이나 지인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중국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중국은 탈북자를 난민이 아닌 ‘불법체류자’로 보기 때문에 여기서 탈북자들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중국에서 남성과 결혼하거나 식당이나 노래방, 유흥업소에 취업하기는 용이하다.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쉽게 돈을 마련하여 한국으로 올 수 있어 한국에 입국하는 여성 탈북자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여성 탈북자들이 남성보다 더 안락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섯째, 북한 여성들은 장사를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에 눈을 뜨고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의식을 많이 갖게 되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에는 먹을 것이 없어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생계형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미래지향적’ 탈북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 가족을 부양해도 밥 짓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는 일은 여전히 자신의 몫이고 남편이나 남성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상황을 불합리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북한은 평등을 지향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남성위주의 가부장제적 질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여성들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끝으로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처벌을 약하게 받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사상오염 교육, 정치심사 등을 철저하게 받고 구류도 엄격하게 적용된다. 반면에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처벌에 대한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탈북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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