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생활했던 탈북자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체제 변화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탈북자들은 이중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인 개인의 노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 풍요로운 사회, 자유로운 사회 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벽과 같은 사회로 본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탈북자 가족은 부부간, 세대간 갈등을 겪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한국으로 체제가 바뀐 것은 인정하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가족성원간에 상반된 생각을 하고 있다. 주로 부부관계에서 남편들이, 그리고 부모와 자식관계에서 부모들이 북한에서와 같은 가족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반면 부인이나 자녀들은 새로운 환경에 맞는 보다 평등하고 개방된 관계를 원하고 있다.
먼저 부부관계를 보면 북한에서 남편은 절대적인 권력자이다. 부인이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를 정도다. 북한에서는 남편이 부인이나 자녀를 구타해도 국가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북한 남편들은 집안에서 문짝 고치기나 땔감 구하기 정도의 일 외에는 어떤 가정일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같은 남성우위의 가부장제적 부부관계가 한국에서도 지속되기는 힘들다. 부인들은 자신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많은데도 남편들이 북한에서와 같은 권위를 지키려 하는 것에 자연히 불만을 갖게 된다.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남편들은 남편대로 “내가 이런 대우 받으려고 목숨 걸고 남쪽에 왔는가. 한국에 와서 부인만 좋아졌다”고 말할 정도이다. 심한 경우 이혼까지 한다. 한국사회에서 2002년 인구 1,000명당 3건의 이혼이 발생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은 이혼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탈북자 부부의 이혼을 쉽게 만드는 환경이 된다. 북한에서 90년대 중반의 경제난으로 이혼하는 사례가 늘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정치범이나 심각한 질병이 없는 한 이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으로 세대간 갈등도 매우 심각하다. 북한에서 자녀는 부모 말에 절대 복종한다. 자녀들은 특히 아버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일례로 식량이 부족할 때 식사를 하는 순서를 비교해보면 ‘남편-시부모-자녀-부인’으로 나타난다. 부모공경이라는 ‘가부장제적 상식’을 벗어나 시부모보다 남편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부모의 생각이 국가의 원칙과 다를 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설문 결과(박현선, 현대 북한사회와 가족, 한울아카데미, 2003) ‘부모의 말을 따른다’가 93.9%, ‘국가적 원칙에 따른다’가 4.9%로 나타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녀들이 한국에 오면 부모에게 반항하고 부모를 무시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탈북 청소년들은 부모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는다. 북한의 학교에서 한참 사회주의 이상과 혁명정신을 배우고 믿고 있던 상황에서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를 따라 북한을 탈출하였기 때문에 부모를 ‘사회주의 조국’을 배신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신의 부모를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탈북 청소년들은 한국에서 생활할수록 부모가 무능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탈북한 부모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중학교(과거의 고등중학교,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고 노동자나 농민으로 일하던 사람들이라 한국에 와서 직장을 갖기도 어렵고 한국사회의 문화에도 뒤떨어진다. 자녀가 영어나 인터넷을 물어도 답을 해줄 수 있는 부모는 별로 없다.
탈북 자녀들의 생활도 쉽지 않다. 사회주의에서 배웠던 내용과 자본주의에서 배워야 할 내용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수학을 제외하고는 영어, 역사, 과학 모두 따라가기 어렵다. 어려운 가정형편상 학원에도 잘 다니지 못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북한 사투리를 쓰고 성적도 낮고, 같은 반 친구들보다 나이는 많지만 몸은 왜소하여 이른바 ‘왕따’를 당하기 쉽다. 집에 돌아와도 부모들이 ‘변했다’고 질책하여 탈북 청소년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다.
자녀양육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탈북자들의 가족생활이 평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은 부부관계보다 자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라 더욱 그러하다. 또한 여성 탈북자들은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위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고민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의논할 상대가 없고, 갑자기 가족이 아프거나 큰돈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대상도 없다.
4) 여성 탈북자의 가족생활은 원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