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귀순동포들은 체제·사상이 서로 다른 북한생활을 통해서 형성된 고정관념, 우리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 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초기 정착생활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법·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무조건 우기거나 큰소리치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인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취업·진학·거주지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북한 또는 제3국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는 등 변화된 새로운 환경이나 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려는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북한에서의 직업 경험이나 중국 연변 등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젊은 남성의 경우 한국에서 운전기사로 취업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북한에서는 운전기사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당원이어야 하며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북한사회에서 대접받는 직업이었다는 인식이 남아있고, 중국 연변 등지에서도 대학교수 등 전문직에 종사하던 엘리트들이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면서 택시기사 등으로 전업하여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한에서의 운전기사는 고노동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업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유통회사의 운전기사들은 각자 거래처의 주문을 받아 해당 상품들을 출하 받고 거래처별로 배달한 후 물건 판매대금을 회사에 납입하는 등 1인 2∼3역을 해야 하는 것을 탈북귀순동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택시 자영업을 위한 개인택시 구입에 소요되는 프리미엄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며 지입제로 운영되는 택시 운송회사의 운전기사로 고용되는 경우 노동시간이나 노동강도에 비해 박봉에 시달리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북한 생활 속에서 갖고 있던 소위 근로인테리에 대한 동경심이나 북한에서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사무직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북한에서 근로인테리로 상당한 대접을 받은 사람들이 남한에서 생산직 근로를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하여 사무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탈북 젊은이들의 경우 대학 진학을 선호하고 있다. 이는 북한에서는 누구나 대학을 다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졸업이 바로 자신의 직업 배치와 출세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도 대학 졸업이 곧 자신의 신분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따른 경우가 많다. 신학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대부분의 탈북귀순동포들은 신자와 성직자에 대한 구분이 애매모호하여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신앙심이 깊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신학대학을 나와 전도사나 목사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도 많다. 그들 중에는 성직자를 어려운 처지에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을 도와주는 등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일종의 직업인으로서 존경한 나머지 선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나원에서 사회편입 거주지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서울 등 수도권 집중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 평양 구경을 한 사람들이 20% 정도도 안되는 상황이다. 이는 평양에 한번 들어가려면 직계 가족이 있거나 꼭 필요한 공무적인 일 외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평양여행 승인번호를 받은 특별여행증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평양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계급적 토대(출신성분)가 좋고 당에 대한 충성심이 아주 높아야 하며 가정에 장애인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이러한 평양에 대한 동경심으로 인해 서울지역에 배치되는 것은 마치 평양에 배치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특히 지방으로 전출된 경험이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에는 더욱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탈북귀순동포들 중에는 북한사회 생활 속에서 형성된 직업, 거주지, 사고방식 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남한사회 초기 정착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다.
탈북귀순동포의 직업과 거주지에 대한 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