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의 식량난, 제3국에서의 은둔·도피생활을 통해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아왔던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남한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을 위한 삶’과 같은 방식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탈북귀순동포들이 정착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자기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국가에서 당연히 지원되거나 자기들은 약자이고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주위의 봉사자들이 당연히 도와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향은 북한에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해결해 주는 배급문화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감사할 마음이 없어서보다는 그 동안 똑같이 배급받는 상황에서 별도로 특별히 어느 누구에게도 감사하다고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직장의 상급자가 쓴 술 한잔을 주더라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우리들 문화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도와줘도 감사인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일들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탈북귀순동포들에게 정착과정에서 남북간에 특별히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남한과 같이 선진화된 국가, 잘사는 나라에서는 자원봉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그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북한사회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시간, 돈을 들여가며 헌신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사회에서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푸는 경우는 손익을 모르는 모자란 사람이거나, 호감을 산 뒤에 역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한다.
진정으로 호의를 베푼 일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유년시절부터 조직생활과 생활총화를 통해 자아비판 내지 상호비판을 해오면서 상대방을 비판하도록 강요받은 생활습관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금방 알려질 거짓말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그런 상황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상습적으로 해온 습관이 몸에 배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일로 인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그 동안 북한에서의 생활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북한사회는 이동·거주의 통제가 심하고 언론·방송이나 전화시스템 등이 폐쇄적이기 때문에 설사 거짓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원거리에 는 그러한 소문이 전달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음주문화도 남한처럼 인간관계나 조직 내 친목이나 화합·단결을 위한 자리로 활용되기보다는 취해보자는 생각에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급하게 많은 양의 술을 마셔 쉽게 취하고, 취하면 대부분 시비나 다툼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자유와 방종 개념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아 “그런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자유민주사회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등 많은 문제를 본인이 유리한 입장에서 해석하는 경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북한체제의 특성상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일이 별로 없고, 도움을 받게 되는 경우에도 이에 상응하는 뇌물·상납 등의 뒷거래가 이루어졌던 생활에 젖어있는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탈북동포의 인간관계 형성의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