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도 지도자 그룹의 실세나 실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직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지극히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탈북귀순동포들의 경우에는 이런 성향이 북한에서의 삶을 통해서 체질화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북한사회는 철저한 권력사회, 계급사회, 집단사회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공동선이 존재하기보다는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무조건적인 최고 권력으로부터 모든 하부조직과 각 개인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서열로 조직화되어 있고, 옳고 그른 것 역시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하여 판단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에 와서도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남한 사람들과 그 힘에 대하여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자신이 파악한 그 힘에 따라 대하는 태도에 큰 차이를 보인다.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에서의 정착생활을 하기 전에 약 2개월 동안 하나원에서 남한사회의 적응교육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일부 교육생들은 이 교육기간 중에 하나원 원장 등 간부들과 거주지 배정직원, 물품보급관(소위 ‘창고장’이라고 호칭) 등과의 인간관계 개선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 물론 남한사회에서 자신의 애로 사항 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당사자란 측면에서 순수한 부분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원 입소전의 기관인 군이나 정보 계통의 사람들을 상대할 때에는 매우 순종적이지만 자신들에게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는 공무원이나 자원봉사자들에 대하여는 비교적 그 권위와 힘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남한사회 정착 초기 일부 탈북귀순동포들은 남한의 실무담당 공무원들에게 요구사항을 제기하였다가 규정상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분개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개인적으로 봐주고 도와주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무원보다 더 높은 공무원을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식의 태도를 보여 남한 공무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이것 역시 북한에서의 이들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 김일성, 김정일은 모든 선과 가치의 근원인 존재들이다. 그것은 북한이 어떤 상식이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 그리고 그와 연관된 규정과 법에 의하여 운영되고 통치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김일성, 김정일 그 개인의 뜻과 생각에 의하여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서는 이러한 통치와 운영방식이 김일성, 김정일의 최고위급에서만이 아니라 가장 말단의 작업장에서조차도 그대로 적용된다.
규정보다도 상급자의 개인적 생각과 의지가 더 중요하고 실제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북한 사람들로 하여금 규정이나 법을 무시하려는 태도, 그리고 힘을 가지고 있는 개인과의 관계에 더 예민하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독재국가에서는 누가 힘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그와 어떻게 연관을 맺어야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의 방법이 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탈북귀순동포들에게는 법치주의 국가의 실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왜 준법정신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교육이 필요하다.
북한사회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일들이 이곳 남한사회에서는 법의 저촉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납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한사회는 법과 제도에 의해 모든 행정이 처리되며, 관계자의 힘이나 상부의 지시에 의해 안되는 일이 되는 사회가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다.
탈북귀순동포의 권력과 법에 대한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