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소위 북한의 ‘미녀 응원단’은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양궁경기를 위해 예천 김진호양궁장으로 가던 예천 시내의 도로변에서 일어났다.



예천 시민들이 준비한 북한선수단 환영현수막에는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악수하는 사진이 들어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북한 응원단이 길거리에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차를 세우게 하고는 수십 명의 북한 여학생들이 뛰어가 그 현수막을 떼어낸 사건이 벌어졌다.



“장군님의 사진이 저렇게 길바닥에 걸려 있다가 비를 맞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의 태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코미디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생각이 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의 카리스마와 이미지 상징조작이 일상화되어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착 초기 일부 탈북귀순동포들이 보이는 심리적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탈북과 남한에 들어온 행동에 대하여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앞세운다는 점이다. 위의 예를 염두에 두고 살펴보면 탈북귀순동포들의 이러한 태도를 이해하기 쉽다. 즉 많은 경우 개인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탈북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반대와 통일을 위하여 탈북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솔직한 생각의 표현을 중시하는 남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과장하고 왜곡하며, 공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런 보상을 주지 않으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열심히 일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의 개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런 방법 중 특히 북한에서 강조되는 것은 집단을 위한 공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즉 국민들로 하여금 작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 집단의 이익과 승리를 위하여 헌신하여야 그것이 올바른 인간이 되는 길이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도록 강력한 사상 주입을 하는 것이다.



어느 사회이건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지만 북한에서는 이것이 매우 극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즉 유치원에서부터의 모든 공적인 교육, 사회 교육, 신문과 TV 등 대중매체의 모든 내용은 그런 사회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도록 하는 데 철저히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국의 건설, 공산주의적 도덕과 양심, 충성과 효도 등 북한을 뒤덮고 있는 표어들은 모두 개인적인 생각을 버리고 집단주의적 가치에 자신을 헌신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개인적 생각,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려는 태도 등은 철저히 매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에서도 공적인 가치와 명분을 붙이는 것을 중시하며 그것을 강조하는 표현 방식과 사고 방식이 발달해 있다는 점이 남한 사람들과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남한사회에 정착하면서 흔히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벽돌 한 장 쌓지 않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환대해 준 데 대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이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는 남한주민들은 마치 정치인들의 기자회견 내용 같아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로 들려 이질감을 느끼거나 오히려 거부감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정착 초기 탈북귀순동포들의 이러한 감사표현은 차츰 줄어들긴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예외없이 나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지적해주면서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실질적이고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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