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TV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자력갱생의 모습들
글쓴이 : 운영자
날짜: 2006-04-19
카테고리:
북한 텔레비전방송, 북한방송, 북한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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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 드라마에 나타나는 최대의 논리적 갈등은 자력갱생의 문제이다. 북한 사회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이미 노골화된 지 오래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내세운 논리인 자력갱생의 구호 역시 일상화된 지 이미 오래이다. 따라서 자력갱생의 구호는 이미 그 약효를 상실하였고, 처방으로서의 한계에 부딪친 것이 드라마의 전반에 나타난다.
이제는 자력갱생의 의미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며 자력갱생의 논리 안에서 합리성을 찾도록 해석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정권이 자신들의 경제적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정권은 “사회주의 시장이 붕괴되고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압력이 강화되면서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자립적 민족경제의 위력한 토대를 만들어 놓고도 훌륭한 용마를 타는 방법을 몰라 경제적 난국을 조성하고 있다”는 김정일위원장의 교시를 강조한다.(‘열망’) (VOD 1)
하지만 이제까지의 단순화된 자력갱생의 논리는 드라마 속에서 무너진다. 연합기업소의 당 책임비서는 공장에서 생산이 지체되자, 기사장의 주장에 따라 부족한 자재인 전극의 자체 생산을 성급하게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기사장의 의욕에만 치우친 주장에 책임비서가 성급하게 동조하게 되자 지배인과 다른 사람들은 이견을 내놓기를 주저하게 되었다.(‘열망’)
이처럼 자체 생산문제에 대해 기업소 내에서는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자력갱생의 명분 앞에서 토론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 결과 자력갱생의 명분 앞에서 모두들 실패가 올 때까지 두고 보자는 식의 현상이 나타났다. 즉 자력갱생의 명분으로 추진되는 사업에 대한 반대는 당의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잘못된 결정이라 하여도 누구도 반대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력갱생의 논리가 북한체제의 효율성에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를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드라마에서는 공장 단위의 자력갱생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자력갱생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열망’) 즉 개별 공장에서 자체해결을 위하여 생산하는 자재가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에 손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 예로 표현된 전극생산은 생산된 제품의 질이 좋지 않아 결국에는 생산의 효율성을 해치고 국가전체로는 부실한 자재를 각자 생산하는 데서 오는 낭비의 예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전극을 전문화된 공장에서 생산하여 수요를 책임지거나 다른 물자를 수출하고 대신 전극을 수입하여 생산에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상과 같은 주장은 단순한 드라마 작가의 해석이 아니다. 『로동신문』(2001년 2월 28일)은 ‘개별 부문에서 실적을 앞세우려고 경제성이 없는 자체 생산기지를 조성하는 것’, ‘일시적 이익을 고려해 연관 부문이나 국가 경영활동에 도움이 안되는 생산공정을 마련하는 것’, ‘무분별하게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전기와 국가자재, 인력을 낭비하는 것’ 등을 철저히 피할 것을 요구했다. 이상의 비판과 요구는 드라마 ‘열망’에 나타나는 논리와 매우 유사하다. 즉 드라마 속의 해석은 조선로동당의 해석인 것이다.
나라 살림은 상관없이 자기 사업만 살피는 모습은 여러 드라마에서 나타난다. 수산사업소의 부지배인은 씨조개까지 내다 팔아서 당장의 기름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하고,(‘배들은 바다로 나간다’) 소금밭 간척사업의 추진을 지지한 한 일군은 실제로는 자기부문의 사업에 지장을 초래할까 우려하여 김정일위원장의 비준을 받고 시행되는 간척사업을 뒤에서 방해한다.(‘붉은 소금’) 이처럼 어려운 경제실정과 계획에 대한 실적을 강요하는 상부의 압력 앞에서 북한의 기업소들은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책임만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는 실정에 있는 것이다.
드라마 ‘열망’은 자력갱생의 새로운 해석에 의한 성공의 사례를 보여준다. 지배인이 전극을 해외에서 수입해서 해결하자고 하는 데 대하여 부총국장은 지배인이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난하며, 이는 당정책에 대한 비판이라고 위협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지배인이 자력갱생의 의미를 국가 단위에서 보고 실익이 있게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자력갱생의 의미를 확대한다.
(VOD 2)
그러나 드라마의 주된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자력갱생이다. 가장 중요한 김정일위원장의 관심사업인 선압기 제작은 수입부품의 사용없이 자력으로 해결하고자 추진된다.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기사장은 선압기를 만들 방법으로 합영합작을 제시한다. 그러나 책임비서는 자력갱생의 정신을 강조하며, 기사장의 말문을 막고 논박하고 기사장이 변절자, 타락분자로 떨어질 수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드라마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자력갱생의 강박이 주어진다.
드라마 후반에서 “나는 창조만을 인정합니다. 창조는 발견이고 성공이며, 모방은 반복이고 실패입니다”라는 김정일위원장의 교시가 해설된다.(‘열망’)
(VOD 3)
이러한 자력갱생의 논리는 고립에 처해 있는 북한경제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김정일위원장의 강박적 주장이 합리적인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고난의 행군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주장을 반복하지만 북한 드라마는 이 고난의 행군이 실제로는 좌절의 순간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드라마 ‘붉은 소금’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식으로 (사업을) 하다가 포기”하였다며 고난의 행군 시기가 실제로는 행군이 아니라 주저앉아 있었던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북한의 드라마는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과 현실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준다.
문제는 자력갱생의 논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력갱생의 논리가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리가 모든 가능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력갱생의 논리가 외부세계와의 대립적 구조로 존재하며, 다양한 여러 나라들과의 융합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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