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 현황과 북한의 변화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개성공단은 사업추진과정에서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했고,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업 초기에는 개발사업자인 현대아산의 자금난으로 인해 사업 착수가 차질을 빚기도 했다. 또한 한반도 정세가 악화되면 그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단행했던 2006년에는 용지 분양이 연기되고, 입주를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아울러 2008년 가을 이후 북한이 남한 정부에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인질화하고, 공단 폐쇄를 무기화함에 따라 입주기업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개성공단 사업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차근차근 진행되어 왔다. 20008월 현대와 북측의 사업 합의서 체결로 막이 오른 후 20036월에 공단착공식을 가졌고, 2006년에는 부지조성공사를 끝냈으며, 200710월에는 1단계 사업 준공식을 개최했다. 이에 따라 단지조성을 비롯해 도로, 상하수도 그리고 전력, 용수, 통신, 정배수장, 폐수종말처리장, 폐기물매립시설 등 모든 기반시설을 완비하게 되었다. 공장용지에 대한 분양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차례에 걸쳐 실시해 총 222개 업체에 분양되었다. 이 가운데는 아파트형공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입주 예정 기업은 300여 개로 늘어난다. 2011년 말 현재 123개사가 입주해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연간 생산액이 3억 달러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산 관광사업의 경우, 199811월 현대 금강호의 출항으로 닻을 올린 이후 무수한 시련과 영광의 순간을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지역에 대한 최초의 정기적인 관광이라는 기대감 속에 출발했으나 2001년에 사업자인 현대아산의 자금난 등으로 중단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39월부터는 육로를 통한 관광이 본격 개시되면서 안정적 성장의 궤도에 들어섰다. 이어 2006년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관광객이 격감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회복되어 2007년에는 연간 관광객 수에 35만 명에 육박했다.

 

 

 

그러던 중 20087월에 관광객 피격 사건이 발생, 이후 현재까지 관광은 36개월 넘게 중단된 상태이다. 그동안 북측의 책임 인정과 재발방지 약속 등을 둘러싼 남북 간 대치가 계속되면서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으며, 천안함 사건 후 정부가 개성공단 이외 남북교역·교류를 전면 중단한 ‘5·24 조치를 내놓은 뒤 금강산 관광 재개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게다가 북한은 기존 사업구도의 무효화 및 새로운 판짜기를 시도하고 있다. 2011년에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 제정이라는 새로운 입법조치를 단행, 2002년에 제정한 금강산관광지구법을 사실상 무효화시키고 사업자인 현대아산의 독점권을 취소했다. 아울러 금강산 지구 내 우리 측 자산에 대한 법적 처분을 단행한다고 발표하고 우리 측 인원을 모두 추방했다. 나아가 북측은 금강산관광사업을 자신들이 주도하는 한편 중국, 해외동포 등 제3의 사업자를 통한 해외관광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서 남측과 마찰을 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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