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 문화예술 변화-공연예술을 중심으로

 

박영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1.

 

지난해 말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지위에 올랐고, 4월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 오른 데 이어, 7월에는 원수칭호를 받음으로써 권력 승계를 마무리하였다. 외부 세계의 예상과 달리 김정은 체제는 빠르게 안착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초 북한 문화예술계는 김정일 추모 행사의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하였지만, 4월 이후에는 밝고 활력 넘치는 분위기조성에 주력하였다. 김정은은 김정일을 김일성과 동격의 지도자로 신격화하는 한편, ‘유원지 공화국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각종 놀이공원을 조성하는 등 외적 활력을 보여 주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연예술계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 막 1년을 경과하고 있는 시점이라 김정은 시대 북한 문화예술의 변화를 논하기에는 다소 섣부른 감이 있지만, 북한 공연예술계의 눈에 띄는 몇몇 장면을 살펴봄으로써 변화의 윤곽을 스케치해 보고자 한다.

 

 

 

2.

201276일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이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있었다. 신생 예술단체의 첫 공연이었지만 이 한 편의 공연으로 북한은 단숨에 개방 효과를 보이며 외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외부세계에서 이 공연을 주목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 등 미국 대중문화 레퍼토리가 평양의 심장부인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연주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공연장을 찾은 묘령의 여인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다. 공연장의 여성은 북한의 공식 발표에 의해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로 판명되었고, 김정은의 개방적 통치 스타일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공연 이상의 효과를 보여 주었다. 디즈니만화 캐릭터가 무대 위에 출연하여 춤을 추고, 무대배경에 미국 만화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방영한 부분은 지금까지 북한 공연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이었다. 이와 같은 미국 레퍼토리의 수용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북한의 정치적 제스처로 보기도 하고,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의 개인 취향으로 보기도 하지만, 북한이 더이상 외부 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적극 수용하려는 자세를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공연 실황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북한 전역에 방영한 것은 이 공연이 단지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외부세계의 관심 못지않게 북한 주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가져올 파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에 등장한 디즈니 캐릭터들(조선중앙TV 캡쳐)

 

이후에도 모란봉악단은 ‘7.27 전승절 기념 공연’, 1010당창건 기념 공연등 김정은이 직접 관람하는 공연을 연이어 선보임으로써 김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북한 예술단체로 자리 잡았다.

 

 

 

3.  

시야를 조금 넓혀 김정은이 후계자로 활동을 시작한 2009년 이후 북한 공연예술을 보면 과거와 달리 매우 다양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대략 세 가지 흐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1950~60년대 레퍼토리를 복원하여 리메이크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피바다가극단은 2009년 중국가극 <홍루몽>2010년 중국가극 <양산백과 축영대>를 공연하였고, 국립연극단은 2009년 중국연극 <네온등 밑의 초병>, 2010년 경희극 <산울림>(1961년작)을 공연하였으며, 국립민족예술단에서는 2011년 최승희의 무용극 <사도성의 이야기>(1956년작)를 공연하였고,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에서는 러시아 가극 <예브게니 오네긴>(1958년 공연)재형상공연하였다. 이들 1950~60년대 레퍼토리는 주체문학예술이전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혁명가극이나 혁명연극 일변도의 북한 공연에서 볼 때 중요한 변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경희극 <산울림>2012105일 국립연극극장에서 500회 기념공연(40여만 명 관람)을 개최하였다.)

 

둘째, 외국 공연 레퍼토리의 수용이 두드러진다. 피바다가극단이 중국 가극인 <홍루몽><양산백과 축영대>를 공연한 것은 북중관계 개선에 활용하고자 하는 실용적 목적과 관계가 깊다. 그러나 이 두 레퍼토리를 가지고 피바다가극단은 전 중국 순회공연을 전개하여 단순히 이벤트로서의 공연을 넘어서는 문화적 효과를 얻고 있다. 또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음악당에서 20102월 첫 공연을 가진 러시아가극 <예브게니 오네긴>은 최근까지 공연을 지속하여 2012622100회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은하수관현악단이나 모란봉악단이 연주하는 외국곡과 함께 가극 분야에서도 외국 작품의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영화에서도 북중 합작 영화 <평양에서의 약속>(2012), 북한, 벨기에, 영국 합작영화 <김동무는 하늘을 날다>(2012) 등이 제작되어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된 바 있다.외국 레퍼토리의 수용은 분명 북한 공연예술의 변화의 단초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연극분야에서도 현대 이전의 서양 고전극(세익스피어 등)의 수용이 이루어질지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셋째, 상업적 활용 가능성이 높은 볼거리 위주의 새로운 공연 작품 창조가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삼지연악단의 음악 반주에 맞추어 만수대창작사 작가들의 그림 시연으로 만들어진 모래그림(샌드 애니메이션) 공연이 등장했다. 또한 외국 관광객 대상의 관광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평양교예단의 대형요술공연이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새로운 레퍼토리로 공연되었다. 특히 평양교예단은 올해 10월 국립교예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교예극 <춘향전>의 첫 공연을 선보였다. 써커스만으로 한 편의 드라마를 구성한 넌버벌 퍼포먼스라는 점에서 상업적 경쟁력이 충분할 것으로 추정된다. 향후 북한 예술단체들은 각 단체의 자력갱생을 위해서라도 상업성이 강한 레퍼토리를 개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립교예단의 교예극 <춘향전>의 한 장면

 

 

 

4. 

김정은 시대의 북한 문화예술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현시점에서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길게는 2009년부터 4년간, 짧게는 20121년간 북한 문화예술에 무엇인가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북한 문화예술의 근본적인 변화나 방향 전환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장 파격적인 공연으로 평가되는 모란봉악단 시범공연조차 외부문화를 자신들의 레퍼토리로 수용하는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문화 수용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주체문학예술이나 선군문학예술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거나 수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기대하는 북한 문화예술의 변화와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 사이에는 쉽게 메울 수 없는 틈이 가로놓여 있는 것 같다.

 

 


 

* 모란봉악단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소형 밴드이다. 악단은 전자바이올린, 전자첼로, 전자기타, 디지털피아노 등 11명의 연주자와 7(처음엔 6)의 보컬로 구성되어 있다. 악단의 리더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출신으로 삼지연악단에서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로 활동하다 픽업된 선우향희(악장)이며, 보컬은 김유경, 김설미, 류진아, 박미경, 정수향, 박선향, 리명희 등이 활동하고 있다.

 

 

 

* 이 글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KBS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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