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현황과 전망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북한당국은 2012년 12월 12일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광명성 3호 2호기’를 탑재한 장거리로켓 ‘은하3호’를 지구궤도로 쏘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은하3호’가 노동미사일과 같은 산화제와 연료를 사용하고 있어 군사목적이 내재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북한은 8번째 핵실험국가가 된 데 이어 인공위성 자력발사국인 10번째 우주클럽 회원국이 되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 그의 3대 유업의 하나로 ‘핵무기와 인공위성’을 그의 업적으로 꼽은 바 있다. 2012년 4월 13일 수정헌법의 전문에서 ‘핵무기 보유국’임을 밝혔지만, 그때까지 인공위성 발사는 성공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난 12월 12일 북한이 ‘광명성 3호 2호기’를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김정일의 유업’이 완성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

 

북핵 위기는 1993년에 북한이 IAEA의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처음 발생했으나, 북한에 경수로 2기와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대가로 핵시설의 동결을 약속한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로 봉합됐었다. 그 뒤 2002년 10월 북한을 방문했던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우라늄 농축 사실을 북측이 시인했다고 주장하면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하였다.


2차 북핵 위기 이후 여섯 차례에 걸쳐 6자회담이 열려, 한반도비핵화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에 관한 ‘9.19공동성명’이 채택되었고, 이 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2.13합의’와 ‘10.3합의’가 만들어졌다. ‘2.13합의’가 완전히 이행된 뒤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담은 ‘10.3합의’가 채택되어 73%까지 이행됐지만, 검증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2008년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을 끝으로 중단되었다.


6자회담의 중단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의 재개를 주장하였지만 ‘남북접촉→북미접촉→6자회담’의 3단계안을 제기한 한국측 입장이 받아들여졌다. 그리하여 2011년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차 남북접촉과 북미접촉이 있었고, 9~10월에 2차 남북접촉(베이징)과 북미접촉(제네바)이 이루어졌다. 3차 북미접촉은 2012년 2월 21~23일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초 2011년 12월 개최 예정이었다가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연기된 것이었다.


3차 북미접촉에서 글렌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 사이에 ‘2.29잠정합의’가 이루어졌으나, 북한의 우주로켓 발사로 인해 사실상 파기되었다. 북한의 우주로켓 발사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정부 관리들이 4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특별기편으로 북한을 방문했으나 이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김정일의 유업’과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운반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핵무기와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고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뒤에 꼭 핵실험을 실시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장거리로켓 ‘백두산1호’를 발사한 뒤에는 핵실험을 하지 않았다. 당시는 「제네바기본합의」가 준수되고 있었기도 했지만, 아직 핵무기가 개발 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002년 10월 미국의 우라늄농축 의혹제기 이후 「제네바 기본합의」가 깨지고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뒤부터 북한은 장거리 로켓/미사일과 핵실험을 잇달아 실시했다. 2006년 7월 5일 대포동 2호를 발사한 뒤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가 채택되자, 북한은 이에 반발해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했다. 2009년 4월 5일 장거리로켓 ‘은하 2호’를 발사한 뒤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자 이번에도 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를 자초했다.


2012년 4월 13일 북한이 ‘은하 3호’를 쏘아올렸을 때 유엔안보리는 이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추가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12월 12일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채택되었고, 2013년 봄으로 넘어간 추가제재방안이 구체화할 경우, 과연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인가?


북한은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을 위한 축하연회의 무대 위에 ‘은하 3호’와 함께 이보다 큰 ‘은하 9호’의 모형을 함께 올려놓았다. 김정은이 “통신위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실용위성들과 보다 위력한 운반로켓들을 더 많이 개발하고 발사”해야 한다고 공언한 것으로 볼 때,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중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북한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임을 명시한 데 이은 후속조치로 보이지만, 유엔안보리 결의 1874호는 명확하게 “북한은 NPT에 따라 어떤 경우든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향후 북핵문제의 전망

 

북한 나름대로 ‘김정일의 유업’이 달성됨에 따라, 이제부터 김정은 정권은 체제안정을 위해 인민생활의 향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제1비서는 인민생활의 향상을 최우선과제로 내걸었다. 그런데 인민생활의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식이든 베트남식이든 개혁·개방이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과연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보유한 채 인민생활의 향상에 나설 수 있을까? 대답은 ‘불가능’이다. 북한지도부로서는 핵무기 보유와 관계개선이 양립하는 ‘파키스탄모델’을 미국이 수용하길 기대하겠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생활의 향상과 핵무기 보유는 양립하기 어렵다. 북한이 인민생활의 향상을 포기하든가, 핵무기를 포기하든가 양자택일의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한이 애써 개발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있는가? 그것이 쉽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열려있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 폐기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굳이 북미 양자대화도 6자회담의 재개 노력도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경우에도 인공위성과 운반로켓의 개발은 지속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 동안은 북한이 핵무기의 포기 없이 국제제재 속에서 최대한 자체 노력과 중국의 지원만으로 경제회생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지도부가 핵을 포기하는 시점은 더 이상 경제회생이 불가능하고 북한주민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를 경우이거나 조기에 경제회생이 이루어져 나름대로 군사적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할 경우가 될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4~5년 동안은 북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1월 19일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재선 이후 첫 해외방문 길에서 핵개발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에 나서면 미국이 경제회생을 적극 돕겠다는 ‘미얀마 모델’을 제시했다. 현재로선 북한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대북 대화파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에 지명되어 북미관계에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2013년의 봄이 오면,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노력이 가시화될 것이다. 지난 4년간 회담이 개최되지 않아 협상의 동력이 크게 약화됐지만, 남북한과 주변국들의 새로운 리더십 등장으로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노력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의 재개와 진전을 위해서는 관련국들의 대화와 협력이 불가결한 만큼, 북한 핵문제뿐만 아니라 역내 안보현안을 논의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향후 6자회담은 새로 등장한 국가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첫 무대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KBS의 공식적인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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