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고원>

야생화를 찾아 우리나라 각지의 산과 들을 찾아다닌 지 30여 년이 넘었다. 그동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늘 아름다운 꽃과 만나 그 자태를 카메라에 담는 데 열중했지만, 해가 더할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움이 쌓여 갔다. 지금까지 야생화에 관한 도감류는 물론 소책자도 여러 권 내놓았지만 항상 반쪽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을 거쳐 백두산의 중국측 고원지인 서부고원지, 북부고원지, 동부고원지를 20여 차례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통하여 남의 나라 땅에서 탐사하고 돌아온 터라 이 역시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지는 못했다.
1990년 6월에 처음 백두산학술탐사단을 이끌고 중국에 다녀온 뒤, 북한의 백두고원을 탐사하기 위해 매년 방북 신청을 하는 동안 10여 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러던 중 2001년 5월, KBS로부터 갑작스런 제의를 받게 된 것이다.


탐사 일정과 성과

2001년 5월 29일, 백두고원 탐사팀은 평양의 순안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 순간, 그토록 그리던 백두고원의 아름다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감격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 이튿날 우리 일행은 평양을 출발해 백두고원에 도착했다. 임시 숙소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장군풀(왕대황), 민산작약, 좀설앵초, 흰갑산제비꽃, 비로용담 등이 반갑게 인사라도 하듯 피어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도 눈과 얼음이 많이 쌓여 있어 우리는 여름 옷을 벗고 다시 두터운 겨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계절에 관계없이 늘 추운 기후인 고원지에서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고산지대의 야생화들과 조우한 필자는, 머무는 동안 매일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장장 34일간 백두고원의 구석구석을 탐사하였다. 때로는 몇 미터 높이의 눈과 얼음이 길을 막아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눈과 얼음 위에 캠프를 설치한 채, 밤이면 수은주가 뚝 떨어지는 그곳의 날씨와 싸워야 했다. 백두고원지는 한낮에도 기온이 많이 떨어져 겨울 점퍼가 없으면 활동할 수 없는데도, 숲이 울창해서인지 깔따구라는 작은 모기가 밤낮없이 설쳐 대는 바람에 취재팀의 고생이 극심했다. 또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커다란 우박이나 비가 내리는 악조건이 되풀이되어 수시로 캠프를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열악한 기후 조건과 빡빡한 일정에 피로와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눈과 얼음을 뚫고 피어나는 많은 꽃들과 밤하늘을 빽빽이 수놓은 별들을 보면서 많은 위안과 힘을 얻곤 했다.
백두고원 탐사는 남한에서 파견된 8명과 북한 안내원을 포함해 모두 20여 명이 팀을 구성해 진행되었는데, 때로는 더 많은 인원이 되기도 하였다. 탐사팀은 2개의 팀으로 나누어, 동쪽으로는 두만강의 발원지부터 시작해 강을 따라 내려가고, 서쪽으로는 압록강의 발원지에서 물길을 따라 수백 킬로미터씩 이동하였다.

동쪽 지역은 하늘 아래 첫 동네라 일컬어지는 신무성 지구에서 두만강 발원지, 무포낚시터, 대홍단 농경지, 해발 900미터에 위치한 약 3천만 평의 밭에서 감자와 밀 농사를 짓는 고랭지 농경지나 삼장 지구, 압록강과 서두수가 합류하는 지점까지 두만강을 따라 탐사하였다.
서쪽 지역은 소연지봉 옆의 압록강 발원지에서 출발해 대연지봉, 소연지봉, 선오산, 곰산, 소백산, 청봉, 리명수 지구, 남포태산, 보천, 내곡리, 곤장덕에 이르기까지 수백 킬로미터를 따라 내려오고 삼지연 지구, 무두봉, 간백산,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백두고원과 그 일대를 탐사하였다.
비록 사진에 담을 수 없는 지역이 더 많았지만, 우리가 백두고원을 찾은 시기가 봄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인 데다 나중에는 여름꽃으로 피어나는 때여서 희귀 특산종인 장군풀(왕대황), 조선바람꽃, 풍선난초, 분황노루발, 명천봄맞이꽃, 민산작약, 너도양지꽃, 물싸리풀을 비롯하여 백산차, 좁은잎백산차 등의 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시기적으로 천지 안쪽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6월에 천지 호반을 탐사할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6월이라고는 하지만 천지 호반 주변에는 두꺼운 얼음이 남아 있었는데 좀참꽃, 노랑만병초 등이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는 모습은 추위와 얼음을 무색케 하는 장관이었다.

<백두고원의 노랑만병초 군락>

더불어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다시 천지 호반으로 들어가, 모래 언덕에 캠프를 설치하고 3박 4일간 천지 호반을 탐사한 것은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이 그 나흘 동안은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 아름다운 천지의 풍경과 더불어 주변에 만개한 돌꽃, 담자리꽃나무, 개감채, 두메양귀비, 흰바위취, 나도수염, 너도양지꽃, 노랑만병초, 콩버들, 개머위, 가솔송, 좀참꽃, 두메자운, 두메냉이, 애기냉이 등 많은 고산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한 맑은 날씨 덕분에 백두산 천지에서의 일몰과 일출을 제대로 보는 행운을 누렸다. 한밤중 천지에서 밀려오는 물결 소리가 너무 웅장해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고 해발 2,200미터에 이르는 천지 호반에서 올려다본 밤 하늘에는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형상의 수많은 별들이 맑은 호수 위로 곧 쏟아질 듯 아름다웠다. 수정처럼 맑은 천지와 주변을 가득 메운 야생화와 밤하늘 별들이 어우러진 밤 풍경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50여 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던 최북단의 백두고원을 두루 탐사하면서, 고원지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도 있었지만,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현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식물들이 우리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원지 사람들의 주식인 감자를 이용한 수십 종의 음식을 직접 먹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또 하나의 소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탐사단 일행이 백두고원에 처음 들어갈 때 엷은 포(包)를 쓰고 꽃망울을 터뜨리던 장군풀(왕대황)이, 탐사를 마치고 떠나 올 무렵에는 귀룽나무와 같이 열매를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거북이 등모양의 만년설>

백두고원의 식물 생태

백두고원은 우리나라 최북단의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백두고원 일대는 그 지형 조건과 특이한 기후 조건으로 인하여 이곳에서 자라는 생물상은 일정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일대는 광활한 고원지로서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 비하여 동식물의 분류군이 매우 다양하고, 그 종 수가 대단히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백두고원 일대의 종자식물(種子植物)만 하여도 103과 418속 1,261종이 분포하여 있으며, 이 밖에도 양치류(羊齒類: 고사리류) 70여 종, 선태류(蘚苔類) 244종, 지의류(地衣類) 275종, 균류(菌類) 327종이 분포하고 있다. 이는 백두고원의 남동쪽, 즉 북측 지역을 한계 지어 나온 숫자이다. 또한 백두고원 일대에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물들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백두산 일대의 특산식물만 하더라도 종비나무, 장군풀(왕대황)을 비롯하여 23과 35속 48종이나 되며, 백두고원 일대의 생태적 환경의 차이로 인하여 동식물 분포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해발 고도에 따른 백두산 일대의 식물 분포를 보면 고산초본대(高山草本帶), 아고산관목림대(亞高山灌木林帶), 침엽수림대(針葉樹林帶), 침엽 및 활엽혼합림대(活葉混合林帶), 낙엽활엽수림대(落葉活葉樹林帶)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고산초본대와 아고산관목림대는 해발 2,000미터 이상 되는 지대로서, 심한 추위와 거센 바람 등 식물의 성장 발육에 불리한 여건을 갖추었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관목류(灌木類)인 좀잎갈나무, 곱향나무 들은 줄기가 높이 자라지 못하고 대개 땅 위로 벋으면서, 밑동에서 여러 개의 가지가 자라 떨기 모양을 이룬다. 또한 이 지역에는 들쭉나무, 담자리꽃나무, 시로미, 좀참꽃, 노랑만병초 등 작은 관목들이 자란다.
초본류(草本類) 역시 키가 큰 식물들은 자라지 못하고, 키가 작은 두메양귀비, 솜분취, 좀설앵초, 은양지꽃, 하늘매발톱, 두메자운, 나도개미자리 등이 자라고 있다.

<신무성 지구의 침엽혼합립>

침엽수림대는 해발 고도 1,100미터에서 1,900미터인 수목한계선 지대로서, 이곳에는 가문비나무류, 분비나무류 등과 더불어 좀잎갈나무군이 우점종으로서 전체 면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백두산의 다른 어느 방향보다 특이한 현상을 이룬다.
해발 고도 1,900미터 안팎으로 수목한계선의 띠대를 이루는데, 이곳은 모두 침엽수림지대로 좀잎갈나무가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을 제외한 중국 지역에는 모두 활엽수인 사스레나무가 수목한계선의 띠대를 이룬다는 점이 다르다.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합림대는 해발 고도 900미터에서 1,100미터 정도의 지대들로서 소나무류, 잣나무류 등 침엽수와 참나무(상수리나무)류, 피나무(달피) 등 활엽수들이 섞여서 자란다.
또한 지리학적으로 볼 때 백두고원은 하나의 분포계선(分布界線)을 이루는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는 백두고원 고유의 생물상(生物狀)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많은 종들이 백두고원 일대를 분포의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으로 하여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백두고원 일대 생물상의 특징은 백두산 일대에서 일어난 조산 운동, 화산 분출 등으로 인한 지역(地域) 및 수역(樹域)의 고립과 분립 등, 복잡한 지사학적 과정을 거쳐 오면서 종 및 아종적 분화가 일어나, 이 지역의 고유한 생물상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백두고원의 식물 군락의 수직 분포도>


백두산 지역의 수목 우점종

교목류(喬木類)
① 분비나무 ② 가문비나무 ③ 좀잎갈나무 ④ 잎갈나무

<관목류>

관목류(灌木類)
① 노랑만병초 ② 좀참꽃 ③ 담자리꽃나무 ④ 눈산버들 ⑤ 물싸리
⑥ 백산차

초본류(草本類)
① 두메자운 ② 은양지꽃 ③ 명천봄맞이꽃 ④ 두메양귀비 ⑤ 하늘매발톱
⑥ 개머위 ⑦ 돌꽃


백두고원의 식물상

<좀잎갈나무>
좀잎갈나무(좀이깔나무)
Larix olgensis A. HENRY
황화송(黃花松), 홍피낙엽송(紅皮落葉松), 만주낙엽송(滿州落葉松), 만주이깔나무라 불리기도 하는 소나무과의 낙엽교목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의 고원지에 자라며, 높이는 30미터 안팎이지만 고원지에서는 5미터 안팎까지 자란다.
생김새가 잎갈나무와 비슷하지만 높이가 작고 수피(樹皮)가 적색인 것이 다르다. 4월에 황색 꽃이 피고 9월에 구과가 익는다.

<조선바람꽃>

조선바람꽃
Anemone chosenicola OHWI
조선은연화(朝鮮銀蓮花)라 불리기도 하는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생초본이다. 우리나라 중부 지방과 북부 지방의 고산지대, 고원지 나무숲 주변의 초원에서 자란다. 북부 고원지에는 압록강 상류의 국경지대, 선오산 및 대연지봉, 간백산 분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높이는 10~55센티미터이고 처음에는 털이 있으나 자라면서 없어진다. 6, 7월에 백색 꽃이 피고 7, 8월에 열매가 익는다.

<횐두메양귀비>
흰두메양귀비
Papaver radicatum var. pseudoradicatum(KITAG) KITAG.
var. albiflorum Y. LEE
두메양귀비라 불리기도 하는 양귀비과의 2년생초본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 백두산 고원지에서 자란다. 높이는 5~10센티미터이고 전체에 퍼진 털이 있다.
6~8월에 백색 바탕에 가운데 황색이 도는 꽃이 피며 7, 8월에 열매가 익는다. 두메양귀비와 같지만 꽃이 흰색을 띤다는 점이 다르다.

<담자리꽃나무>

담자리꽃나무
Dryas octopetala var. asiatica NAKAI
선녀목(仙女木), 다판목(多瓣木), 담자리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장미과의 상록소관목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의 고산지대, 백두고원 등지에서 자라며 높이는 3~10센티미터이다.
잎은 마치 풀같이 보이며 원줄기는 가지를 치면서 옆으로 벋는다. 6, 7월에 지름 2센티미터 정도의 백색 꽃이 핀다. 7, 8월에 꽃이 핀 자리에서 할미꽃의 씨날개처럼 하얗게 부푼 암술대 끝에 수과가 달린다.

<노랑만병초>
노랑만병초
Rhododendron aureum
GEORGI
우피두견(牛皮杜鵑), 황화두견(黃化杜鵑), 석남화(石楠花), 만병초(萬病草), 노랑뚝갈나무, 들쭉나무라 불리기도 하는 진달래과의 상록관목이다. 우리나라 중부 지방과 북부 지방의 고산지대, 백두산 고원지에 많이 자란다. 높이는 1미터 안팎이고, 어린 가지에는 잔털이 있으나 자라면서 없어진다. 5~7월에 연한 황색 꽃이 피고 9월에 삭과가 익는다. 잎은 강정제(强精劑)로 사용한다.
높이는 23센티미터 안팎이고 모든 잎이 뿌리에서 나온다. 6, 7월에 백색 꽃이 피고 8, 9월에 삭과가 익는다. 분홍노루발과 같은 용도의 약재로 쓴다.

<담자리참꽃나무>

담자리참꽃나무
Rhododendron parvifolium var. alpinum GIEHN
모전두견(毛氈杜鵑), 담자리참꽃이라 불리기도 하는 진달래과의 상록성 소관목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의 고산지대, 백두고원의 수목한계선 이상에서 자란다. 높이는 10~15센티미터이다. 잎 뒷면에 갈색의 비늘 조각이 빽빽이 나 있다. 6, 7월에 홍자색 꽃이 피고 9월에 열매가 익는다.

<명천봄맞이꽃>

명천봄맞이꽃
Androsace septentrionalis L.
북점지매(北点地梅), 북봄맞이라 불리기도 하는 앵초과의 1년생초본이다. 우리나라 북부 지방의 고산지대 백두산에서부터 시베리아까지 널리 분포한다. 높이는 10센티미터 안팎이며 모든 잎이 뿌리에서 나와 지면으로 퍼진다. 6, 7월에 삭과가 익는데, 종자는 갈색이고 3개의 능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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