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실운동’을 불러일으켰던 정춘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와 IMF관리체제는 여성에게 해고 ’0순위’라는 악몽을 가져다 주었다. 북한 역시 1990년대 경제적 위기 상황에 처했고 지금도 그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여성의 지위는 사회 안팎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북한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떤 여성 정책을 갖고 있을까?



북한은 1945년 해방 이래로 각종의 여성 정책을 시행하여 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정책으로서 당시 남한 여성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 1946년 7월 30일 공표된 “북조선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9개조)”이다. 이 법령은 ‘동일노동·동일임금’,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자유결혼권과 자유이혼권을 명시하고, 재산상속권과 이혼시 재산 및 토지 분배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하였다. 조혼이나 민며느리제도, 일부다처제, 공·사창제도 등과 같은 봉건적인 관습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었다. 이러한 조치는 북한의 헌법이나 노동법, 사회주의가족법 등에 반영되어 있다.



또한 1946년 3월에 대대적으로 단행된 ‘토지개혁’ 당시 성인 남녀 모두에게 1점씩을 부여하였다. 비록 토지는 호당 합산되어 분배되었지만 여성에게는 자신의 몫을 자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전국 문맹률 77.8%, 여성 문맹률 90% 이상이었던 1945년 해방 당시, 북한에서는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여 여성들에게 새로운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여성들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역사의 주인이라는 여성들의 권리 의식의 발전과 함께 사회적 책임감도 같이 형성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전쟁으로 북한 군민 150여만 명이 사상하였고, 전전에 6만여 명의 군대가 전시 60여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사회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일찍이 ‘여성의 노동계급화’ 정책을 시행하여 노동 가능한 여성을 모두 산업 현장으로 동원하였다. 1970년대쯤 되면 만 15세 이상 여성의 70%에 달하는 여성이 일하게 된다. 여성해방과 함께 여성노동력의 최대 동원을 위하여 각종의 여성 복지 정책(“북한의 여성 및 아동 복지” 항을 참조 바람)을 실시하였다. 1950, 60년대에는 공동식당을 경영하여 여성의 가사 일손을 기계를 만지는데 동원하였다. 1970년대에는 ‘가사노동의 사회화’ 정책을 실시하여 여성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여성 노동력을 극대화하였다. 심지어 가정주부일지라도 가내작업반을 조직하여 가사와 부업을 병행하는 조치를 시행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하면서 사회적으로 유휴노동력을 동원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1990년대 중, 후반 북한의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지고 계획에 따른 분배 조절 기구가 거의 작동하지 못하게 되자 북한에서는 여성 복지 정책을 폐지하지는 않았지만, 양과 질의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인구가 감소하고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자 북한에서는 ‘모성영웅’을 선전하며 여성들의 다산을 장려하고 여성의 ‘혁명적 어머니’ 상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북한이 경제 성장에 자신감을 보일 당시에는 ‘가사노동의 사회화’정책으로 여성의 노동력을 동원하는데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남녀협업’의 분위기가 젊은층 사이에 형성되도록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북한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면 다시 1970, 80년대와 같이 여성의 진취적 사회 참여의 확대나 남녀 평등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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