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내의 한 가정집
2002년 현재 남한에서는 소리없는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남존여비사상을 지지하며 세계 1위의 여아 낙태를 조장하는 사실상의 주범이 호주제도와 호적제도에 기초한 가족제도라는 인식이 공명되어 일제가 만든 이 제도를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호주제도와 호적제도는 차이는 있으나 가장을 중심으로 한 호적제도는 호주제도를 지지하는 요건으로서 일제식 ‘가(家)제도’를 온존시켜 왔다. 또한 호주제도는 성씨와 재산, 제사의 상속권으로 구성되고 있다.



그럼 북한에도 호주제도가 있을까? 북한에서 호적제도를 봉건사회의 잔재라 하여 1946년 9월1일 호적제도를 공민제도로 바꾸었고, 1947년 4월 8일자로 「공민의 신분등록에 관한 규정」을 공표하여 호적제도를 없앴다. 또한 한국전쟁을 통해 과거 호적의 상당 부분이 소실됨으로써 사실상 호적제도는 완전히 폐지되게 되었다. 호적제도가 없어짐에 따라 부계 가족 구조를 만드는 호주제도가 북한에서는 폐지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4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가족관계에서의 남녀평등-남편과 안해(아내)의 평등, 부친과 모친의 평등 등등은 우리 가족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하였다. 1990년 제정된 “사회주의가족법”에도 호주·호적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관계의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미 1946년부터 아버지의 재산은 가족에게 평등하게 상속되어 딸, 아들 재산균분제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모계혈통을 인정하여 모친 계통과 딸 계통의 친척도 부계혈통의 친척과 함께 부양의 의무를 동등하게 가지며, 인척의 경우에도 부양의 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아들에게만 제사를 상속하고 있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사회적 관습으로 제사 풍습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제사 상속은 거의 의미가 없다. 또한 여성이 남성의 호적에 올라 남성이 호주가 되는 것으로 가족이 형성되는 제도를 가진 남한과 달리 호적제도가 없는 북에서는 결혼으로 가족이 만들어지고 이혼을 하면 가족 관계가 해소된다.



법·제도적으로 북한의 가족관계에서 ‘가부장제’적 구조는 상당히 취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에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잔존할 뿐만 아니라 선남사상도 꽤 강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강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북한의 가족법 제26조에 따르면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또한 식량이나 주택 등의 공급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노동자나 사무원은 식량을 공급(북에서는 공식적으로 ‘배급’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음)받도록 되어 있다. 만일 4인 가족에 3명이 노동을 하여 각각 식량 공급증명서를 가지고 있더라도 정기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때는 아버지가 대표해서 받게 된다. 주택 역시 아버지가 대표해서 받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북한에는 우리의 가(부)장에 해당하는 ‘세대주’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또한 남성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든 노동을 많이 하고 10년에 가까운 군복무를 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남성우월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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