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탁아소
북한에서 여성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복지나 일반 사회복지의 제도적 수준은 이미 1970년대에 높아져 1980년대에 절정을 이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70년대 서방과 교류를 위해 유럽 여러 나라들과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중 후반 두 차례의 석유위기(oil shock)로 인해 북한은 대외채무변제를 불이행하여 국제사회에서 신용불량국이 되었다. 그런 조건에서도 북한은 사회복지 부문의 정부예산을 줄이지 않았다. 그런 북한을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다하여 존 할리데이(Jon Halliday)는 북한을 ‘수수께끼(enigma)’의 나라로 불렀다.



북한의 여성 부문에 대한 복지 조치 가운데 우선 여성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한 조치로서 ‘가사노동의 사회화’ 정책을 들 수 있다. 1950년대 전후 복구 건설에 여성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하기 위하여 북한에서는 공동식당을 운영하여 여성들의 일손이 가사대신 기계, 펜대를 잡도록 했다. 공동식당 운영에 대한 뚜렷한 평가는 없지만, 북한 주민의 정서에 그렇게 맞지 않았는지, 차츰 없어져 1970년대 이후로는 밥공장, 부식공장, 장공장 등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한 1950년대 후반부터 각종의 옷공장과 생필품 공장, 공동세탁소, 공동식당을 설치운영하고, 가정용 냉동고와 전기가마 등의 부엌세간을 공급해 나갔다.



또한 모성보호조치로서 여성의 출산 기능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월 1회의 유급 생리휴가를 인정하고 있다. 임신한 여성에 대해서는 매달 1번씩, 출산이 가까워지면 보름에 1번, 일주일에 1번씩 정기적으로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출산할 경우 평양산원이나 기타 산원에서 무료로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이 직장을 다니면서 출산할 경우 산전 35일, 산후 42일의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다. 1986년 이후부터는 산전 60일, 산후 90일 총 150일의 100% 유급휴가를 실시하고 있다. 또 산모에게 수유시간을 주어 생후 1년 이하의 유아를 가진 어머니의 경우 오전·오후 각 2회 각 30분씩, 1년 이상의 유아를 가진 어머니의 경우 오전 오후 각 1회 각 30분씩 할당되어 있다. 농촌에 있어서는 1985년부터 사회복지정책이 도시 노동자, 사무원과 동일하게 시행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조치와 함께 북한에서는 여성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사회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탁아소와 유치원을 증설하였다. 1947년 탁아소 설립에 대한 규칙이 제정된 이래 탁아소 및 유치원은 꾸준히 증설되어 1976년 경에는 6만여 개 시설에 350만여 명이 수용되었고, 1988년 경에는 탁아소 1만9천262개, 유치원 2만8천358개 시설에 200만여 명이 수용됨으로써 대상 어린이들을 대부분 포괄하게 되었다. 탁아소 수용은 의무는 아니지만 직장 여성들로서는 대부분 이용하고 있다. 탁아소는 1일 탁아소 외에도 주 탁아소 등 장기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그외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예방의학’을 실시하여 여성이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도록 하고 여성이 많은 공장이나 기업소에 여성 관련 의료시설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1990년대 경제 위기 과정에서 이러한 사회복지 제도에는 양적·질적인 훼손이 온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북한 스스로는 폐지를 공표하지 않고 있으므로 향후 이러한 제도를 어떻게 복원시키고, 질적 수준을 어떻게 높여나갈 것인가는 북한의 위기 극복의 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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