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발자취>
평양에서 역사의 첫 걸음을 디딘 사람들은 구석기인들이었다. 그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는 동굴 유적은 평양에서 동남쪽으로 약 30㎞ 떨어진 상원군 일대에 퍼져 있다. 평양지역에 유난히 구석기 동굴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이 일대에 석회암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구석기인들의 뼈를 찾아낸 장소는 모두가 석회암 동굴인데, 동굴 천장에서 조금씩 흘러내린 알칼리성 석회수가 무수한 시간을 두고 뼈를 화석으로 바꾸어 버린 결과이다. 더욱 이러한 석회암 동굴은 층위가 분명히 구분되고, 동식물상의 자료들이 잘 분포되어 있는 이점이 있어서, 구석기인의 삶을 추적하는 귀중한 유적이 된다.
 
< 용곡동굴 >
평양 상원에 있는 검은모루동굴의 유적은 구석기문화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킨 대표적인 유적일 뿐만 아니라, 공주 석장리 유적 및 단양 금굴 유적과 함께 동북아시아 대륙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대략 70만~60만년전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북한에서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동굴조사운동을 벌여 200개 이상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중 평양 일대에서만도 상원 청청암 유적, 덕천 승리산동굴 유적, 대현동 만달리동굴 유적, 용곡동굴 유적, 승호동굴 유적 등이 계속 조사되었으며, 이들 석회암 동굴유적에서 많은 고동물 화석과 고인류 화석들이 발굴되어 북한 구석기학계의 큰 성과가 되었다.


이 지역에서 나온 가장 오래된 구석기 사람은 검은모루 유적 인근의 상원 용곡동굴에서 출토되었다. 여러 석기와 함께 10사람 분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뼈 화석이 발견되어 ‘용곡사람’이라 명명되었다. 대략 전기 구석기시대의 호모에렉투스 단계의 인류로 추정되고 있다.
 
< 역포사람(복원) >
다음은 평양시 역포구역 대현동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역포사람’으로 이름지어진 사람으로, 7~8세 정도의 어린이였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후기구석기시대이며, 체질적으로는 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에 해당한다. 구석기인이 살았던 유적으로는 덕천 승리산 유적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유적에서는 지층 아래층과 위층에서 각각 슬기사람과 슬기슬기사람(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화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슬기사람을 ‘덕천사람’, 슬기슬기사람을 ‘승리산사람’이라 부른다. 후기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슬기슬기사람은 평양 만달리동굴에서도 그 흔적을 남겼다. 20~30살쯤의 남자로 복원된 그를 ‘만달사람’이라고 부른다.
 
< 승리산사람(복원1) >
< 승리산사람(복원2) >
즉 평양 일대에 살면서 자신의 화석을 오늘에까지 전해주는 구석기인은 용곡사람, 역포사람, 덕천사람, 승리산사람, 만달사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석기인은 우리의 조상인가 >
승리산 동굴에서 발견된 사람 아래턱뼈를 기본자료로 북한학계는 ‘승리산사람’을 복원하였다. 승리산사람의 아래턱뼈 길이는 현대인과 비슷하지만, 넓이는 비교적 넓은 편이며, 머리가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얼굴 특징에 나타난 높은 머리와 넓은 얼굴 하관부는 오늘날 한국인 특징의 일부와 통하는 면도 있다는 것이 북한학계의 주장이다.


‘만달사람’은 얼굴을 되살려낼 수 있는 머리뼈와 아래턱뼈를 남겼다. 앞머리뼈에는 현생 인류에게서만 찾아지는 화살융기도 들어있었으며, 턱구멍도 현대인처럼 낮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25~30살 정도의 건장한 용모의 청년으로 복원된 만달인에서는 오늘날 우리들의 얼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 만달사람(복원1) >

< 만달사람(복원2) >

북한 학계에서는 승리사람이나 만달사람은 한반도에서 인류 진화 과정을 거친 슬기슬기사람의 핏줄을 이어 받은 우리나라 사람의 직접적인 선조라고 보고, 특히 만달인은 우리나라 사람의 시원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은 다른 지역에서 생겨 이동해 온 것이 아니라, 수만년전에 한반도에서 발생하여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른바 ‘본토기원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승리산사람이나 만달사람과 같은 후기구석기인류를 오늘날 우리 민족의 직계로 단정짓기에는 아직 많은 무리가 뒤따른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이 되는 화석인류의 자료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이 승리산사람이나 만달사람을 오늘의 우리 민족과 연결시키는 배경에는 아무래도 정치성이 깔려있다고 보인다. 민족의 뿌리가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것을 강조하고자 한 의도는 아닐까. 북한의 ‘역포아이(역포인)’ 와 남한의 ’흥수아이‘는 진화의 발달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결코 같은 시기에 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오늘날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새벽에 살았던 구석기인들의 발자취는 보다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남한에서도 1983년에 충청북도 청원군 두루봉동굴에서 슬기슬기사람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분석 결과 나이는 5세 정도, 키는 110~120㎝ 정도이며, 특히 뒤통수가 튀어나와 요즘의 말로 표현하면 짱구형이고, 아래턱은 둔탁하며, 머리뼈를 검사한 결과 현대인과 선사인의 특징을 함께 지닌 것으로 드러났다. 얼굴을 복원하니 아주 귀여운 모습이 드러났다. 지어준 이름은 ‘흥수아이’.

geo_321_01_01.jpg(26.26Kb) 

목록보기

goo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