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수교회
기독교 역시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1960년대 말까지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974년 조선 그리스도교연맹이 세계기독교협의회(WCC)에 회원가입을 신청함으로써 다른 종교에 비해 일찍이 해외에 그 존재를 알리고 활발한 활동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대외선전적 차원의 활동이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종교 본연의 활동이라는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평양에 최초로 1988년 봉수교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이다. 1992년 두번째로 평양에 칠골교회가 세워졌는데, 현재 이 두 교회에서 100-300명의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있다.



성직자로는 30여명의 목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1972년 설립된 평양신학원에서 양성하고 있다. 교역자는 목사 30여명, 전도사 130여명으로 평양신학원 출신들이며, 당국은 기독교 신자가 12,000여명 정도, 가정교회가 500여개 라고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를 1983년, 1984년 각각 출간하고 1989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를 개설하여 신학도 강의되고 있다.



평양신학원을 졸업한 후 배치와 승진 등은 승려와 마찬가지로 중앙당 통일전선부에서 담당하며 중앙당 비서국의 비준대상이다. 교역자에 대한 대우는 중앙당의 공급대상으로서, 배급과 부식을 중앙당 공급소에서 받는다. 한편 남한의 일부 선교단체들은 약 100∼500개의 지하교회가 당국의 눈을 피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울러 천주교(天主敎)의 경우, 1988년 조선카톨릭교협회가 결성된 후에야 비로소 그 존재가 표면화되고 활동이 재개되었다. 천주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해방 직후 북한이 단행한 토지개혁과 중요 산업국유화 조치로 인해 그 경제적 기반이 와해되고, 또 바티칸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는 천주교의 특성상, 타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식적인 활동 재개가 늦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에는 1989년 평양에 장충성당이 설립됨에 따라 성당이 하나 있으나 신부, 수녀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신자들만으로 그것도 40대 후반 이후의 100-150여명 신자만으로 주일 공소예절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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