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본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화 정책의 일환으로 북한 지역을 중심으로 일부 공업을 발전시켜 갔다. 이들 공업의 발전은 일본 독점자본에 의해 장악된 군수공업이 중심이 되었고,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 가담하면서 조선인들은 자본과 기술을 발달시키지 못한 채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본은 전쟁 수행과정에서 무리하게 공장을 운영하여 공장 설비의 상당 부분을 망가뜨렸으며, 패망 당시에는 19개소의 수력발전소를 파괴하였고 64개의 탄광과 광산을 침수시켰다. 또 178개소의 탄광·광산, 47개소의 기업소를 여지없이 파괴하였다. 특히 흥남공장, 성진제강, 청진제철, 평양화학공장 등의 대기업소를 대대적으로 파괴하였으며, 북한 철도도 마비상태에 빠져 있었다.
일본이 패망한 후 일부 공장과 기업소들은 노동자들에 의해 장악되기도 하였지만, 대규모 공장의 대부분은 소련군이 진주한 후에야 인민위원회에 접수되었다. 따라서 일본이 소유하였던 대부분의 공장, 기업소는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경영하게 되었는데, 이 숫자는 북한 전체 산업의 90% 이상인 1,034개에 달하였다. 특히 큰 공장의 경우에는 경제 전체의 마비로 인하여 국가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이 없이는 경영이 불가능하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인민위원회는 공장의 재건을 위해 일본인 기술자들을 잔류시키고, 소련군의 지원을 받기도 하였다. 소련군은 점령초기에는 일본과 북한지역에서 일부 공업시설을 약탈해 가기도 하였지만, 북한의 산업 재건에 상당한 지원을 하기도 했다. 특히 1946년 2월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면서 북한 지역에 대한 통일적인 행정이 이루어지게 되자, 토지개혁과 중요산업 국유화가 추진되었다.



1946년 8월에 실시된 북한의 중요산업 국유화는 이미 인민위원회에 장악되어 있던 일본 소유의 기업들이 국가의 소유로 전환되는 법적인 조치였다. 1946년에 중요산업 국유화가 완수되고 난 후, 1946년 12월 1일부터는 지배인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유일관리제의 초기적 형태가 시도되어, 기업장의 책임자는 산업국장이 지시하는 생산책임량의 완수와 해당 기업장의 경리.경영에 대한 독립채산의 책임을 가지게 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유능한 지배인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생산기업장 지배인 강습소를 설치하고 현직 지배인의 일부(2개월)와 기술이나 사무적 중등 상식을 가진 자 중에서 장차 기업을 지도할 자(6개월)들의 강습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또 중요산업국유화 조치에 앞서 6월에는 1일 8시간 노동을 실하는 노동법령을 공포하였다.



<필자 : 이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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