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도입된 프로복싱

프로스포츠

 

1992년 북한은 프로복싱을 도입하였다. 북한 프로권투협회는 95년 세계복싱협의회(WBC)에 가입하고 97년에는 세계복싱협회(WBA)와 범아시아복싱협회(PABA)에도 가입했다. 북한에 프로복싱이 도입된 배경은 당시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에서 선수들이 세계프로무대에 나가서 활약하고 달러까지 벌어들이는데 자극을 받아서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여자 프로복싱선수도 2000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여자선수로는 지순복 선수나 지운복 선수가 우수선수로 알려졌다.

 

북한의 프로복싱 수준이 높다는 것은 99년 남한의 프로복싱프로모터인 숭민프로모션이 성사시킨 5개국 프로복싱대회에서 확인되었다. 중국 선양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북한의 김기환(미니 플라이급)선수, 최평국(플라이급) 선수가 각각 동급인 남한의 박명섭선수와 박한준선수를 KO패 시켜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999년 통일농구대회에 참가한 남북한 선수단

이외에 프로스포츠로는 프로농구를 들 수 있다. 현대가 추진했던 남북 농구 교류전에 참가했던 북한의 번개팀과 우뢰팀은 프로팀이라고 알려졌다. 이외에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지적했던 ‘일부 종목의 프로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축구의 프로화를 추진하려는 의도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프로복싱과 프로농구처럼 국제 프로스포츠시장을 염두에 두고 프로스포츠 조직에 가입하는 것 만으로 프로스포츠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엄밀한 의미에서 북한에서 선수는 특정 기업, 시·군·구 체육단에 소속되고 직업적으로 급여를 받지만 프로 선수라기보다 세미 프로인 우리 나라의 실업팀 선수의 지위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즉 평양시체육선수단, 압록강체육선수단, 경공업성체육선수단, 기관차체육선수단 등에서 체육선수단 앞에 붙는 기관명칭이나 직장명칭은 이들 직장이나 기관이 체육선수단을 보유하고 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들 선수들이 시장에서 자유롭게 스카웃이 되거나 매매되지 않는다는 것도 북한에 프로스포츠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점이다.

또한 북한의 프로스포츠선수는 프로스포츠선수가 갖는 경제적 독립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농구선수 리명훈의 미국진출 협상 과정에서도 리명훈이 급여를 수령 할 수 없다는 점이 큰 장애물로 등장한 바 있다. 또한 1990년 후반 중국의 프로축구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한 선수들이 중국 프로팀에 진출한 바 있지만 이들 선수들의 경우도 선수들이 선수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는 북한의 방침으로 계약이 난항을 겪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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